이번 총선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곳은 단연 대구였다. 대구가 어떤 곳인가. 여당(새누리당)에선 '깃발만 꽂으면 그만'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여당에 대한 지지가 견고한 곳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대구가 흔들렸다. 탈당파 무소속 후보들의 공세는 물론 김부겸, 홍의락 등 야권 정치인들의 반란(?)으로 달구벌이 뒤집혔다. 가히 '대구판 민란'이란 말이 나올만하다.
그 배경엔 민심을 무시한 '진박' 내리꽂기, 유승민 퇴출 파동, 새누리당 계파 간 안하무인격 밥그릇 싸움에다 야권의 김부겸'홍의락의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도전 등이 기폭제가 됐다. 대구 선거구 12곳 중 4곳이 비(非)새누리당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새누리당이 싹쓸이한 19대 총선에 견주면 상전벽해다.
야권이 분열한 수도권에서도 총선 전까지 새누리당의 압승이 예상됐다. 서울'경기 122석 중 야권이 87석을 가져가고 새누리당은 35석을 얻었다. 여당으로서는 1988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이다. 정치는 삼류였지만, 우리의 유권자는 일류였던 것이다.
한반도에 민심의 대지진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청와대, 여야 정치권, 언론 모두 몰랐다. 왜 몰랐을까? 과연 대지진의 진앙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었나.
대구로 범위를 좁혀보자. 타지역으로부터 '보수 꼴통' 소리를 들었던 대구 유권자들은 왜 새누리당에 대한 집착을 끊고 다른 선택을 했을까?
대구 민심의 바다는 내리꽂아도 찍어준다는 오만,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볼모로 한 선택 강요, 입바른 소리를 하는 자에 대한 왕따, 콘텐츠 없이 상대 비방하기 등 소아적 정치 행태에 쓰나미를 몰아쳤다. 한마디로 대구 유권자들은 TK 정치의 '낡은 관성'을 깨뜨려 버렸다.
북을의 홍의락 무소속 당선자를 보자. 홍 당선자는 지난 19대 국회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지역 안배 차원에서 비례대표로 어렵사리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공천에서 배제돼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는 국회의원이 된 후 대구와 북구를 위해 온몸을 던졌다. 홍 당선자는 공직자들에게 가장 고마운 존재다. 정부 관료를 불러 대구시 공무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야당이 삭감하려던 예산을 지켜내고, 지역구에선 구석구석 발품을 팔았다. 선술집에 가면 젊은이들이 사인을 받을 정도로 주민들과의 스킨십도 맹렬했다.
홍 당선자의 의정 활동, 지역구 관리가 지역 국회의원, 특히 초선의원들의 모델이 아닐까 싶다. 그가 선택받은 것은 권력자만 바라보지 않고 시민과 주민을 위해 몸을 던지는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대구 시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예전에 없던 정치 지형을 만들었다. 여야 간 경쟁 구도를 만들었고, 이른바 '진박' 일부도 살렸다. 또 지역구와 주민을 위해 열심히 한 후보도 살렸다. 제대로 하라는 명령이다. 당과 계파를 넘어 대구의 살길을 위해 힘을 모으고, 주민들의 요구와 아픔을 제 몸같이 하라는 명령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벼슬하는 사람은 네 가지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는 권력 당국, 둘째는 감독 기관, 셋째는 하늘, 넷째는 백성이다. 많은 벼슬아치들이, 의원들이 권력 당국이나 감독 기관은 두려워하면서 가장 가까이서, 가장 정확하게 감시하는 하늘이나 백성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일갈한 것이다.
도도한 대구 민심의 바다는 이번 총선을 통해 지역 정치인들에게 많은 깨침을 주고 있다. 시민들의 선택 기준은 '사람'이었다. 이런 깨침을 체화하지 않는다면 다음 선거에서 어느 누구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이제 대구 시민들도 '보수 꼴통'의 원죄(?)에서 어느 정도 부채 의식을 벗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냉철한 눈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선량(選良)들을 지켜보자. 대구 시민들께서 멋진 드라마를 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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