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위대한 소원

병마·죽음…아프지만 자꾸 웃음이 난다

"총각 딱지는 떼고 죽고 싶어"

시한부 절친의 마지막 꿈

"함께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소중"

죽마고우들의 사랑스러운 우정

공부 잘하고 농구 잘하는 학생이 어느 날 루게릭병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와 어린 시절부터 죽마고우이던 두 친구는 공부는 꼴찌여도 우정을 최고로 여기는 의리의 사나이들이다.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느낀 소년과 친구들, 그리고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부모. 병마, 죽음, 가족, 친구, 우정, 추억, 그리움. 눈물로 범벅이 될 소재다.

그러나 '위대한 소원'은 이 무겁디무거운 소재들을 유머로 받아넘기고,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가볍게 만들어 오히려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또래들과 같은 욕망을 가진 보편적인 존재로 보는 시선을 갖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신체적 조건을 오히려 그 사람만의 개성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몸은 움직이지 못해도 뇌는 활발하게 기능하고 있어, 자나깨나 '야사시한' 생각만 나고 '죽기 전에 꼭 총각 딱지를 떼고 말리라'는 주인공의 바람은 '장애인의 성'이라는 사회적 문제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한다.

누군가는 장애인의 성이나 시한부 인생의 죽음을 희화화하지 말라며 불편함을 호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하는 것만이 올바르다고 볼 수 있을까. 슬픔을 웃음으로 받아넘기는 것이야말로 삶이 주는 한없는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다. 찰리 채플린의 페이소스를 생각해보자. 그의 우스꽝스러운 몸짓 뒤에는 대공황이라는 지독히도 어려운 현실이 있었다. 그는 이것을 웃음의 동력으로 삼아 많은 이들에게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 '위대한 소원'은 심각한 문제들을 포복절도할 코미디로 버무리는데, 영화는 상실의 슬픔에 아파할 시간보다 당장 그와 함께 일상을 즐기는 것의 행복감에 대해 말한다.

고등학생인 고환(류덕환), 남준(김동영), 갑덕(안재홍)은 불알친구다. 서로의 '병신 짓'을 기꺼워하며 자란 세 사람이지만 고환이 루게릭병에 걸린 후 남준과 갑덕의 학교생활은 지리멸렬하기만 하다. 어느 날 고환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한 남준과 갑덕은 마지막으로 총각 딱지를 떼고 죽고 싶다는 고환의 소원을 이뤄주기로 결심한다. 전교 꼴찌인 두 사람답게 막무가내로 주변에 도움을 청해보지만 제대로 진행될 리 만무하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도저히 성공할 것 같지 않은 이 작전에 고환의 아버지와 담임선생님까지 가세하기에 이른다.

많은 이들이 영화 '스물'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생존과 방황에 지쳐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청춘을 그린 '스물'과 B급 유머 정서는 비슷할지언정 여러 면에서 다르다. 여성 비하와 외모 차별주의가 불편한 유머 코드로 작용해 관객의 호불호가 갈렸던 '스물'처럼 '위대한 소원'도 장애인의 성을 유머 코드로 만든다는 점에서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진 큰 장점은 어떠한 차별주의도 없이 막막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터놓고 있으며, 죽기 전 한 번 해보고 어른으로서 죽고 싶다는 소년의 바람은 그럴듯하다. 두 바보 콤비가 친구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룸살롱 주위를 배회하고 폰팅 업체에 전화를 돌리는 장면은, 영화가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장애인의 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콜걸이 잠깐 등장하지만,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소비적인 캐릭터로 낭비하지 않고 그녀에게도 인성을 부여한다. 누군가에 대한 비하나 차별주의 없이 유머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코미디 영화다.

어설픈 상남자 남준과 유복한 철부지 갑덕이 보여주는 B급 유머가 영화 내내 웃음을 끊이지 않게 한다. 거기에다 진지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의 노력은 세대 차이에서 오는 불협화음 때문에 큰 웃음을 지어낸다. 류덕환, 안재홍, 김동영 세 젊은 배우들이 주고받는, 리듬감 넘치는 대사 연기와 끝까지 망가지는 몸 연기가 훌륭한 데다, 전노민과 전미선의 진중한 배우 이미지를 활용한 웃음 유발 요소는 허를 찌르며 코미디를 강화한다. 우지원과 이한위의 특별출연도 어색하지 않은 웃음 포인트다.

무엇보다도 영화는 상실감으로 괴로워할 시간에 그 사람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함께하는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그래서 죽음은 아프지만, 두렵지 않다.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줄 것이다. 생존과 방황 때문에 아파하다 해변을 질주하며 소리치는 청춘이 아니라, 남들은 비웃어도 생긴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우정이라 더욱 사랑스럽다. 이상하게도 기특한 이 새로운 청춘영화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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