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참패 13일 만인 26일 새누리당은 가까스로 국회의원 당선자 모임을 가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죄 또 사죄' 모드였다. 그러나 겉으로만 그랬다. 한 꺼풀 벗겨보니 계파 싸움은 선거 전과 비교해서 더했으면 더했지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 재확인 시켰을 뿐이었다.
보시다시피 아시다시피 새누리당은 스스로 변할 능력이 없다. 그동안 자생력 없이 대통령만 바라본 결과다. 대통령이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말았으니 자업자득이다. 새누리당이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멘붕' 상황의 새누리당이 스스로 변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무게가 너무 나간다.
해법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박근혜로 시작해서 박근혜로 끝이 나는 것처럼 선거운동을 했던 새누리당을 변화시킬 수 있는 키는 박 대통령만이 갖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비관론이 더 많다. 총선 직후 박 대통령을 잘 안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들은 대통령이 변할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민심은 대통령이 제일 먼저 변하라는 것인데도, 대통령은 아마도 불변일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3년 만에 가진 언론사 간부들과의 간담회 광경도 이들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누리당에서조차 "확 와 닿는 게 없다"는 비판이 더 많았다. 박 대통령은 이날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에 따른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내각과 청와대의 인적 쇄신도 못한다고 했다. 국민들의 기대와는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의 것이지 청와대와는 무관하다고 강변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건 필자 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총선 전후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미련을 접었다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문에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사람들도 흔들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 장벽 같던 지지율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이유가 짐작이 갔다. 어떤 조사에서는 30% 아래로도 내려갔다. 선거 직전보다 선거 후에 10% 포인트 더 내려갔다. 화난 민심이 숙지지 않았음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절박할 때 정치적 승부수를 걸고 매번 성공했음을 기억한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는 2004년 17대 총선 상황은 지금 돌이켜봐도 극적이다. 탄핵역풍과 차떼기당 소용돌이에서 한나라당을 '천막당사'로 구해낸 이가 바로 박 대통령이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국민여러분께 지은 죄를 진심으로 참회한다. 새롭게 출발하려는 저희들의 마음만은 간곡히 받아달라"고 호소했다. 한나라당은 기사회생했다. 그로부터 7년 뒤 2011년 12월에도 박 대통령은 비대위원장으로 나서 당의 간판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승부수를 던졌다.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물론 성공했다. 그 여세를 몰아 대통령선거도 이겼다. 두 번의 승부수에는 박 대통령의 진심과 절박함이 담겨 있다고 국민들은 믿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도 박 대통령의 승부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조국 근대화'의 영웅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과 나란히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첫 부녀 대통령의 신화가 꼭 완성되기를 바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박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국민들을 위해서도, 이 나라를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박 대통령의 짐심어린 '삼 세 판'째 승부수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나오기를 기대한다.
며칠 전 박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수술이 무섭다고 안 하고 있다가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이 말이 꼭 경제에만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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