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인 '질 바비에'의 '에코 시스템'(Echo System)을 관람했다.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이 작가의 작업에는 생성과 소멸, 증식하는 우리의 삶과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가 자유분방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의 작품은 존 콘웨이가 '세포자동자' 원리를 구축해서 개발한 소프트웨어 '생명게임'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새로운 세포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변화하는 생명게임의 법칙처럼 질 바비에의 작품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된 다양한 시리즈와 장치로 구성되어 있다. 질 바비에의 생명게임에서는 인간주사위가 등장해 일련의 사건을 연출한다. 작가가 상상한 우주의 생성신화를 대변하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신기한 모험을 상징하는 인간 주사위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장치이다.
질 바비에는 '프리쉬 라 벨 드 메'(Friche la belle de Mai)를 통해 성장했고 지금도 그곳에서 작업하고 있다. 노동자층이 모여 살던 '라 벨 드 메' 지역의 폐쇄된 담배공장을 1992년 마르세유시가 매입해 예술단체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면서 시작된 곳이다. 현재 마르세유의 가장 '핫'한 장소이다. 3개 구역으로 나누어진 이곳은 도시 유적 아카이브 시설,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시설,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레지던시 외 다수의 예술단체 사무실, 연습실, 전시장, 공연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500여 회의 문화행사와 80여 회의 워크숍, 180여 개의 국제교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매년 방문객 120만 명이 찾는 축제의 장소인 이곳은 유럽의 문화예술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자 마르세유시는 이곳을 매각할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러나 결국 시, 예술가, 상주단체들의 협의 아래 이곳은 사회적기업 형태로 전환되었다. 이곳은 정부가 아니라 예술가들과 지역민들이 주체가 되어 운영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버려진'(friche) 장소가 시의 탁월한 정책 덕분에 슬럼화되어 가던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관광사업을 통해 지역 경제에 활성화를 가져다주는 희망의 장소로 재탄생했다.
2012년 대구시 중심에 위치한 KT&G 공장 중 하나가 '예술발전소'로 문을 열었다. 대구시도 주변 다른 전매청 공장 건물들을 아파트 단지 건립을 위해 매각하는 대신 확장된 복합문화예술 창조공간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예술가와 지역민 주체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국제적 네트워킹을 구축해 진정한 도시 발전을 가져올 장소를 근시안적인 경제 논리로 놓치지 말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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