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길 안동의 보물을 찾다]<10·끝>삼태사 천년의 길

고려 개국 공신 안동 金·權·張 시조의 고고한 숨결 그대로

봉정사 일대에는 또 다른 천년 세월을 기리기 위한 길이 조성돼 있다. 고려개국을 도왔던 삼태사 공신들의 뜻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봉정사 일대에는 또 다른 천년 세월을 기리기 위한 길이 조성돼 있다. 고려개국을 도왔던 삼태사 공신들의 뜻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삼태사 천년의 길'이다. 이 길은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안동 김씨 태장재사'와 성곡리 '안동 권씨 능동재사',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 등 흩어져 있는 삼태사의 흔적을 이어주고 있다. 엄재진 기자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장정필(張貞弼). 세 사람은 왕건이 안동 병산전투에서 견훤을 물리치고 고려를 건국할 수 있도록 도와 삼태사(三太師)로 불린 인물들이다. 안동 삼태사는 신라 말기인 930년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병산전투 당시 안동부(安東府) 주민들과 함께 왕건을 도와 전쟁에서 승리, 고려 개국 공신에 이름을 올렸다.

왕건은 삼태사의 공을 높이 치하해 '삼한벽상삼중대광아부공신'(三韓壁上三重大匡亞父功臣)의 직위를 제수하고 고창군(古昌郡)을 부(府)로 승격시켰다. 특히 '동국'(東國)을 안전하게 했다는 뜻에서 지명을 '안동'(安東)으로 명명한 후 삼태사의 본(本)으로 내렸다. 이후 후손들이 김태사는 안동 김(金), 권태사는 안동 권(權), 장태사는 안동 장(張)의 시조로 삼았다. 안동의 정체성을 품은 '삼태사 천년의 길'을 권영세 안동시장과 함께 걸었다.

◆천년 고찰 봉정사와 삼태사를 잇는 '천년의 길'

안동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봉정사는 신라 의상 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창건하고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간 아름다운 사찰이다. 이 절의 극락전(국보 제15호)은 공민왕 12년에 지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유명하다. 숱한 역사와 비'바람에도 천년 세월 동안 안동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간직해오고 있는 사찰이다.

봉정사 일대에는 또 다른 천년 세월을 기리기 위한 길이 조성돼 있다. 고려 개국 공신들의 뜻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삼태사 천년의 길'이다. 이 길은 서후면 태장리에 있는 '안동 김씨 태장재사'(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6)와 성곡리 '안동 권씨 능동재사'(중요민속자료 제183호), '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경상북도 기념물 제155호) 등 흩어져 있는 삼태사의 흔적을 이어주고 있다.

안동시가 지난 2013년 마무리 한 '삼태사 천년의 길'은 모두 9.5㎞다. 서후면소재지에서 학가산 온천으로 가다가 오른쪽 경당 종택을 지나 한참을 골짝으로 가다가 덕거리를 지나 나타나는 '장태사공 성곡재사'. 이곳에서 재일마을과 봉림사지 삼층 석탑까지 2.3㎞는 장정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다시 이곳을 출발해 숙지골을 지나 새로 지은 정자에서 숨을 고르고 안동 숭실재와 안동 권씨 능동재사까지 이어지는 2.6㎞는 권행, 궁골과 봉정사를 지나 느티나무보호수와 윗태장 쉼터를 거쳐 안동 김씨 태장재사까지는 김선평이라는 인물과 천년 세월을 거슬러 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안동시는 이 길에다가 육각정자 쉼터 2곳과 평의자, 안내판 등을 설치하고, 장태사 재사 주변에는 느티나무와 눈 향나무, 자산홍 등 600여 그루의 꽃과 나무를 심었다. 성곡리 금계재사와 권태사 재사 주변에는 소나무와 산철쭉 등 4천200여 주를 심고 육각정자를 마련했다. 김태사 재사 주변에도 육각정자와 안내판, 왕벚나무와 자산홍 2천300여 본을 심었다.

이 길 어디를 오르더라도 울울창창 하늘로 곧게 뻗어 오른 소나무와 천년 세월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아 때묻지 않은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숲길을 따라 산을 오르고, 길을 걸으면 천년 세월 속에서 안동의 정체성을 전해주던 삼태사의 정신과 올곧은 뜻이 가슴에 스미는 듯하다.

◆일신안전 버리고, 고장수호 위해 왕건 도운 삼태사

신라 말, 당시 신라는 국운이 쇠약해 곳곳에서 도적떼가 일어났다. 특히, 옛 백제 땅에서는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고 옛 고구려 땅에서는 고려가 일어나 나날이 세력이 강성, 신라 천년 왕조는 풍전등화였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이 틈을 타 927년(경애왕 4년) 군사를 이끌고 신라 수도였던 경주를 점령했다. 경애왕을 자살하게 하고 왕비를 능욕하며 재물을 빼앗아 그 피해가 막심했으나 힘이 약한 신라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고려 태조 왕건은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구원하러 왔으나, 팔공산 동수싸움에서 대패해 신숭겸, 김락 등 많은 장수와 군사를 잃은 채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퇴각했다. 고려 태조 12년 견훤은 승승장구한 여세를 몰아 의성, 풍산 등의 여러 고을을 빼앗고 안동을 공격해 왔다.

10년 전 팔공산 싸움에서 패한 이후 군사를 기르며 때를 기다리던 고려 태조도 이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남하해 안동에서 고려와 후백제의 두 군사는 생사를 건 대전투에 임하게 됐다.

이듬해 1월 예안에 주둔하고 있던 고려의 왕건 군대는 안동 북쪽의 병산(안동 와룡면)에 진을 치고 후백제군은 맞은 편의 석산(안동 와룡)에 진을 치고 대치했다. 이른바 고려 개국의 시작을 알린 '병산전투'였다.

지금까지 승리를 거듭한 견훤의 군대는 병력도 많고 사기도 충천했으나 고려 태조의 군대는 그렇지 못했다. 이 때문에 대상(大相) 홍유 등 숱한 신하들이 전쟁이 불리하면 후퇴할 길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태조에게 진언할 정도였다.

당시의 고창(안동의 옛 이름) 성주이던 김선평(金宣平)과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 등 세 사람은 일신의 안전만을 위한다면 마땅히 견훤에게 항복하는 것이 옳았지만, "돌아가신 경애왕의 원수를 갚을 좋은 기회다. 포악 무도한 견훤으로부터 이 고장을 수호하기 위한 길이다"며 고려 태조에게 귀순했다.

이에 고려 태조는 큰 힘을 얻게 됐다. 이 고장 지리에 밝은 세 사람의 성주는 강하고 사나운 견훤의 군사와 정면 대결해서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고을 사람들을 이끌고 고려 군대와 힘을 합해 '저수봉'(猪首峰'지금의 안동 뒷산)에서 밤중에 견훤의 군을 뒤에서 습격했다.

때를 맞추어 고려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정면에서 진격하니 견훤은 견디지 못하고 8천 명의 군사를 잃은 채 도망치고 말았다. 이로부터 고려의 병력은 날로 강성해지고 청송을 비롯한 안동 주위의 30여 고을과 동해 연안의 여러 고을 등을 합해 100여 고을이 모두 고려에 귀순하기에 이르렀다.

고려 태조는 이 병산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세 사람의 공로를 높이 치하해 선평은 대광(大匡), 행과 정필은 대상(大相)을 삼고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 고창군을 안동부(安東府)로 승격시켜 삼태사의 '본'으로 삼도록 했다.

◆권영세 시장, 안동의 길에서 건강 유지할 것을 추천

천년의 길 걷기에 나선 권영세 안동시장은 "길은 문명과 문명, 사회와 사회를 이어주고 있어 흔히 인간의 역사는 길의 역사이고, 길의 문명이라 할 수 있다"며 "안동에는 유난히 오래된 역사가 담긴 길이 많다"고 했다.

길게는 천년에서 짧게는 오백년까지 세월을 거슬러 안동의 역사와 선현들의 숨결이 담긴 길들이 복원돼 최근 힐링 붐과 함께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안동 도산면에 위치한 '마의태자 길'과 서후면의 '삼태사 천년의 길'은 천년 세월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녹아 있고, '왕모산성 길'과 영호루에서 낙암정에 이르는 '공민왕 길'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한 후 백성을 걱정하는 공민왕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길로 인기를 얻는 곳이라는 것.

농암과 퇴계, 제자들이 청량산을 오가며 사색의 공간으로 활용됐던 '퇴계 오솔길'은 가장 걷고 싶은 길 가운데 하나로 사랑받고 있고, 화산을 돌아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잇는 '유교문호의 길-하회'병산 길'은 오백년 전 서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권 시장은 시민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오솔길 조성사업에 적극적이다. 안동시장 부임 후 추진한 많은 사업 가운데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사업 중의 하나가 안동호 보조호수를 끼고 돌 수 있는 '호반나들이 길' 개설이다. 1976년 안동댐 준공 이후 수려한 경관에도 불구하고 40여 년 동안 난공사 등으로 미뤄오다 지난 2013년 35억7천만원을 들여 목교와 데크로드, 로프 난간 등을 설치해 낙동강 수변공간과 연결해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길이 되고 있다.

권 시장의 '길 사랑'은 계속될 예정이다. 올해도 1억원을 들여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연결하는 선비 길을 보수하고 영호루에서 낙동강 생태공원을 잇는 공민왕 길에도 1억원을 들인다. 또 3대 문화권 사업을 통해 도산면과 예안면 일대에 수변탐방로(55.6㎞)와 수림탐방로(34.8㎞), 자전거탐방로(56.1㎞) 등 146.5㎞에 이르는 탐방로도 함께 추진되고 있어 힐링로드 천국으로 만들어 간다는 계획이다.

권 시장은 "안동의 오솔길에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있고, 그 길을 걷다 보면 한가함과 평온함을 느끼며 사색에 잠길 수 있어 힐링 공간으로 최고다. 여기에다 길 속에 녹아 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역사, 선현들이 남겨 놓은 글을 통해 생각까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며 "안동의 명품 길에서 자연과 교감하고 힐링을 통해 건강도 유지할 것을 강력 추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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