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기철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5월은 산과 들과 나무와 풀의 계절이다. 또한 도시와 마을은 삶의 향연을 꽃피우는 축제의 계절이다. 이 계절이면 전국의 어느 도시건 각양각색의 축제가 열리고 형형색색의 삶의 불꽃이 폭죽처럼 터진다. 더욱이 5월의 대구는 봄의 축제 가운데 백미인 '이상화 문학제'가 열린다.

이상화는 대구가 낳은 시인이자 한국인이 가장 아끼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가슴의 말을 시로 전했다. 그러기에 그의 시가 전언한 민족혼은 아직도 우리 가슴에 남아 있다. 대구에는 그를 기리는 3기의 시비가 있고 해마다 그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수성문화원이 주관하는 '상화문학제'와 이상화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상화문학제'가 그것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이상화를 연구했고 그의 이름을 빌린 전문서(專門書) 3권을 상자했다. 그러면서 수성문화원이 주관하는 '상화문학제'의 초창기 4년 동안 조직위원장으로 그 기획과 진행의 전 과정을 맡아 운영한 바 있다. 그때부터 필자는 이상화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 혹은 축제의 양분화를 지양하고 일원화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 뜻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십수 년이 지난 아직도 그 사업은 이분화되어 있다.

올해도 축제가 같은 날 2, 3일 동안 두 단체의 이름을 명기한 채, 유사한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두 단체의 운영에도 여러 가지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주관 단체의 두 이름을 병기한다든지, 날짜를 같은 날로 하여 이질성을 최소화하려 한다든지, 시인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을 한쪽 단체에서만 시상한다든지, 행사장을 수성못 상화동산과 상화고택, 청라언덕으로 달리한다든지 하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 두 문학제의 이질성을 모두 무마하거나 흡수할 수는 없다.

상화 시를 주제로 하는 학술제는 반드시 한 단체에서 집합적으로 수행해야 하고 발표자나 토론자는 전문성을 띤 인사가 맡아야 한다. 전문가는 물색하면 국문학계나 시단에 다수가 있다. '상화문학제'에서 굳이 김영랑을 병행하는 일도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이미 필자가 하고 있는 연례 사업 가운데 '동서공감'이라는 행사가 별도로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학제라 할 수 있는 '만해문학제'도 만해 외에는 다른 시인을 병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문제는 상호간 기득권을 내려놓는 일이다. 출범의 선후를 앞세워 자기 우선을 주장하는 일은 당해 시인을 추억하고 기리는 일과는 먼 일이다. 조금만 스스로를 낮추고 양보한다면 두 단체가 함께 피워 올리는 축제의 꽃은 더 아름답게,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오로지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 또한 그것이 상화의 시 정신에 부합한다.

세계 어느 나라의 문학제에서도 동일한 문인의 기념행사를 한 도시에서 두 단체가 양분되어 펼치는 일은 없다. 대구가, 대구 시민이 이상화를 기리는 마음은 이보다 더 고양되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한 시인을 기리는 축제가 지금의 양상처럼 양분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그 힘을 한데 모아 펼친다면 명실공히 더 알차고 성숙된 행사에 이를 수 있다. 이상화의 시(詩)도, 이상화의 영혼도 그걸 원할 것이다. 더욱이 이 축제 경비 일부는 각각 대구시와 수성구청이 지원하기에 그 필요성은 배가(倍加)된다. 그렇게 되면 이상화문학상 역시 유수한 다른 상처럼 당해 시인의 시사적 위상에 조금 더 부합하는 상으로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우남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잠언을 남겼고 도산은 '서로 사랑하면 살고, 물고 찢으면 망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서로의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동일한 사업, 동일한 축제를 동일한 날짜에 서로 다른 단체의 이름으로 행한다는 것은 노력의 낭비를 넘어 감정의 낭비에 이르는 길이다. 그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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