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표준화 환자

대학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교육이다. 의과대생의 경우 본과 3학년을 기점으로 병원에 임상실습을 나오게 된다. 의대 교육의 일차적인 목표는 능력 있는 의사 양성이다. 능력이 있다는 것은 풍부한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활용해 환자에게 적용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특히 최근 교육의 방향은 지식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의사를 만드는 데 있다. 의사국가고시에서 실기시험이 도입된 것도 지식 여부만을 판단하지 않고 실제의 수행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실제 병원 환경에서 의대 실습생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의대 실습생들이 환자와 직접 면담하고 진찰하며 여러 가지 술기를 시행하는 것은 환자 보호와 법적 제약이라는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다. 외래환자나 입원환자에게 사전 동의를 구하고 병력 청취나 진찰 등을 하거나 교수의 감시하에서 환자에게 해가 되지 않는 간단한 술기를 하는 것 정도도 환자들의 이해 없이는 힘들다.

최근 의학교육에서는 환자를 대하는 임상 상황에 조기 노출시키는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환자와의 만남은 기초의학이나 임상의학을 배우기 시작하는 의대 1, 2학년 학생들에게 필요하다.

이러한 요구들에 의해서 생겨난 역할이 '표준화 환자'다. 표준화 환자는 환자의 병력과 성격, 감정적인 반응과 신체적 소견을 정확히 재현하도록 훈련받은 사람을 말한다. 표준화 환자를 활용한 교육은 원하는 병명과 증상, 상황 등을 교육을 받는 학생의 수준에 맞춰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또 병원에서 잘 보기 힘든 증례 등을 만들어서 교육할 수도 있다.

표준화 환자는 단순히 환자 역할만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의사국가고시에서는 채점을 하는 역할도 하고, 환자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태도에 관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대구에도 이러한 표준화 환자 역할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부업이나 봉사 차원에서 하는 이들이다. 연기를 전공한 연극배우들도 많고 병원 직원이나 의대 교수들의 친구, 가족 등이 참여하기도 한다.

표준화 환자는 먼저 주어진 시나리오를 숙지하고 연습을 통해 환자의 병력과 신체적 반응을 익힌다. 시험이나 강의 과정에서 학생 의사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그들이 진찰을 할 때 주어진 내용대로 반응을 보인다. 어려움도 많다. 익숙하지 않은 환자 역할을 해야 하고 시나리오를 익혀야 하며 학생 의사에게 진찰을 위해서 몸을 맡겨야 한다. 표준화 환자들의 많은 노고에도 불구하고 사정상 많은 보상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늘 아쉽고 미안하다. 지역에서 훌륭한 의사를 만들어 낸다는 자긍심과 봉사 정신으로 어려운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표준화 환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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