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회장은 50대 초반의 자수성가한 미국 사업가다. 1987년 중앙대를 중퇴, 미국으로 건너가 7번이나 사업에 실패하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 1천300여 개 도시락 매장을 갖고 있다. 연간 3천여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개인 재산이 4천억원을 넘는다. 회사에는 부채가 단 한 푼도 없다. 대담에 그를 초대한 것은 재산이나 성공담 때문이 아니다.
'성공한 사업가의 최고 선행은 자신의 성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야 한다' '가장 이타적인 것이 가장 이기적인 성공 비결'이라는 김 회장의 사업 철학 때문이었다. 일 년 중 4개월을 한국에 머물며 자신의 실패와 성공 스토리를 대한민국 '성공 도전자'들과 나누고 있었다. 등의 책을 냈고, 조만간 '사장학' 관련 서적을 낸다고 한다.
초여름 더위가 시작되던 6월 중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어렵게 시간을 낸 그를 만났다.
▷김밥 말이 쇼(show)
김병준: 성공한 기업인이다. 하지만 실패도 많이 경험한 것 같다.
김승호: 7번 실패했다. 가르쳐주는 선배도 없었다. 실패를 통해 배울 수밖에 없었다. 특이한 것은 7번 모두 다른 이유로 실패했다. 그게 큰 경험이 된 것 같다.
김병준: 그 정도 되면 용기를 잃곤 하는데….
김승호: 우스운 이야기지만 언젠가 큰돈을 벌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김병준: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다. 어떤 사업을 하는지 직접 소개를 좀 해 주었으면 한다.
김승호: 슈퍼마켓 안에서 도시락으로 대변되는 동양 음식 파는 일을 한다. 11년 되었다. 그 외에 미국 슈퍼마켓을 대상으로 하는 유통회사와 유보금을 관리하는 금융자산회사, 그리고 전주에 가발 원사 만드는 회사 등이 있다.
김병준: 주력 사업은 역시 도시락 매장이고?
김승호: 그렇다. 미국화된 스시 도시락이다. 우리 김밥과 일본 스시의 중간쯤이라 생각하면 된다. 미국과 유럽 등에 1천300개 정도의 매장이 있다. 종업원이 4천500명 정도 된다. 올해 400개 정도 더 늘어날 것 같다. 매장별 매출도 연 10% 정도 성장하고 있다.
김병준: 성장 속도가 놀랍다. 일단 미국 사람들이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김승호: 좋아한다. 고급 매장으로 들어가면 이런 종류의 음식이 없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김병준: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지 않겠나.
김승호: 좀 특별한 전략을 썼다. 판매에 쇼(show)적인 요소를 가미해 식품 비즈니스가 쇼 비즈니스도 되도록 했다.
김병준: 무슨 말인가?
김승호: 통상 이런 음식은 배달을 받아 팔았다. 소비자는 그게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걸 손님들 앞에서 직접 만들었다. 고객들은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김밥이 만들어지는 '신기한' 과정을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직접 만들어 먹거나 가져가기도 하고….
김병준: 그러자면 종업원들이 잘해야겠다. 고객 앞에서 일종의 공연까지 해야 하니….
김승호: 당연히 사내에 이를 훈련시키는 교육기관이 있다.
김병준: 알고 나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혁명적 발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승호: 작은 변화 내지는 혁신이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눈을 뜨고 보면 도처에 그럴 수 있는 일들이 보인다. 하다못해 목욕탕의 '때밀이'만 해도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조금만 바꾸어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공중위생에도 좋고 고객도 좋아하고, 그만큼 비즈니스도 더 잘될 수 있다.
▷생각의 마술
김병준: '생각'의 힘을 믿는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김승호: 무엇을 절실히 생각하면 생각한 그 무엇을 이루게 된다는 말이다. 길에 보이는 빌딩을 비롯해 많은 물건과 현상들이 모두 사람들의 생각과 상상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생각과 상상의 결과물 속에 살기도 하고, 나의 생각과 상상의 결과 속에 다른 사람을 살게도 한다.
김병준: 생각하면 이루어진다? 아니면 생각해야 이루어진다?
김승호: 어떻게 성공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러면 이렇게 답한다. "무엇을 목표하는지를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 먼저이다.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손에다 적어서 가지고 다녀라."
김병준: 적어 다니기만 하면 되나?
김승호: 이걸로 1억원을 벌겠다, 아니면 저걸로 10억원을 벌겠다 하는 식으로 성공 여부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목표를 생각해야 한다. 막연히 돈을 많이 벌겠다거나 훌륭한 사업가가 되겠다 하는 식으로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이 오락가락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는 안 된다.
김병준: 영어로 말하면 '오퍼레이셔널라이저'(operationalize), 즉 구체적인 수치 등으로 나타낸다는 뜻인 것 같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나?
김승호: 첫 번째 매장을 인수받은 날 미국 지도를 놓고 점을 300개 찍었다. 김밥을 말아 돈을 벌자가 아니었다. 매장이 300개 이상이 되어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300개 매장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연히 모든 생각을 매장 300개를 여는 데 집중했다. 이때부터 내 메일 비밀번호를 '매장 300개'로 바꾸었다.
김병준: 실제로 그렇게 되었나?
김승호: 4, 5년 지나 매장이 300개가 되었다. 이제 목표는 3천 개이다. 매장 하나를 300개로 늘리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쉽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김병준: 매일 매장 3천 개를 생각하고 있겠다.
김승호: 그렇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지금 생각하는 목표를 매일 100번씩 100일을 써보라고 한다. 쉽지 않다. 쓰다 보면 내가 무슨 짓을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고, 정말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이기면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긴다.
김병준: 어떤 변화인가?
김승호: 당장 사람과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그만큼 진지해진다는 말이다. 아울러 기회를 기회로 알고 잡는다.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기회가 와도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른다.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절실히 원하는 사람, 또 그만큼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김병준: 100일 쓰다 보면 이게 되는 일인지 안 되는 일인지, 또 나와 맞는 일인지 안 맞는 일인지 걸러지기도 하겠다.
김승호: 걸러지기도 하고 더 강력해지기도 한다.
김병준: 주력 사업을 미국에 두고 서울에서 경영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김승호: 이란 이름으로 전후반기로 나누어 16주짜리 강의를 하고 있다. 이 일 때문에 1년에 4개월 정도 서울에 머물고 있다.
김병준: 그래도 회사 경영에 문제가 없는가?
김승호: 회사 경영은 가능한 만큼 시스템으로 한다. 경영자는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이 좋다. 게다가 한국에서 벌이는 사업도 있다.
김병준: 그래도 4개월이면 긴 시간이다. 상당한 부담이 될 것 같은데 이렇게 하는 무슨 특별한 이유나 배경이 있나?
김승호: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실패를 많이 했다. 젊은 사업가들이 내가 한 실수를 하지 않고 사업을 해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아울러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서도 이기적인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선의로 어떤 일을 열심히 하면 사업이 더 잘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병준: 먼저 앞부분, 즉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부분부터 이야기해 보자. 그러자면 자연히 현장 중심, 즉 기업인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강의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김승호: 비즈니스에도 테크닉이 있다. 이 테크닉을 중심으로 토론한다. 보통 직장인은 선배들로부터 직장 생활에 필요한 테크닉을 배운다. 하지만 기업인에게는 그런 선배가 없다. 앞서 간 기업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들이 경쟁자인 경우가 많다. 터놓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2세 경영자와 같은 다른 조건에서 출발한 사람도 많다.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주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강좌는 매우 중요하다.
김병준: 예를 들면 어떤 내용을 생각할 수 있나?
김승호: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면 가족이 회사로 들어온다.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으며 그에 따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 토론을 한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창업 공신과 동업자의 문제, 100억 매출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난관, 500억원과 1천억원 매출 기업이 극복해야 할 과제 등이 토론 주제이다. 기업의 생사가 걸린 비즈니스 현장 교육이다.
김병준: 그런 걸 가르치고 토론하는 곳이 없나?
김승호: 거의 없다. 경영대학원이 적지 않게 있지만 교수가 주로 강의한다. 또 인맥 쌓기 위주로 운영된다. 사실 기업인들은 실질적인 문제와 경영 테크닉을 듣고 토론하고 싶어 한다. 자신과 회사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매출 100억원, 200억원 정도의 기업은 정말 답답해한다. 물어볼 데가 없기 때문이다.
김병준: 입학 경쟁이 꽤나 치열하겠다.
김승호: 소리 내어 모집하지 않아도 몰려들고 있다. 학위 과정이 아닌 곳에서 면접을 봐서 탈락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탈락한다. 학생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상당한 규모의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이 많다.
김병준: 어떤가? 어쨌든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인이라 강의나 토론을 할 때 미국 경험을 많이 이야기할 것 같은데, 그게 한국 기업인에게 도움이 되나?
김승호: 기업 환경이나 문화에 차이가 있다. 프랜차이즈 사업만 해도 미국에서는 가맹점들의 서비스 균일성을 확보하기 쉬운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가 않다. 균일성 확보를 위한 법적 장치가 약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도 거래의 불투명성, 불합리한 관행 등 있을 것은 다 있다. 기본적인 경영 방식에 별 차이가 없다.
김병준: 강의를 하는 두 번째 이유로 '이타적 행위를 통해서도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하고 싶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뜻인가?
김승호: 일례로 경쟁자를 죽이면 더 강한 경쟁자가 나타날 수 있다. 경쟁자를 죽이는 데 힘을 쓸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와 경쟁하며 자기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직접, 간접의 경험을 통해 이런 점을 같이 확인해 나갔으면 한다는 뜻이다.
김병준: 얼마 전 진화론자인 최재천 국립생태원장도 매일신문 대담에서 비슷한 취지로 이야기를 했다.
김승호: 라는 신규 사업이 있다. 편의점과 식당의 중간 형태로 고객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진열대에 놓으면 이를 골라 먹거나 가져가는 방식이다. 임대료가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데 회전율이 빨라 수입이 그만큼 늘 수 있다. 아직은 경쟁자가 없는데 오히려 경쟁자가 나왔으면 한다. 그래서 누구든 와서 보고 사진 찍게 한다. 경쟁자가 있어야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 더 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병준: 끝으로 관심 있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물어본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모집을 하나?
김승호: 한국에서는 하지 않는다. 모두 직영만 한다. 직영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가맹점들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김병준: 많은 사람들이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하다가 실패를 한다.
김승호: 이유가 있다. 가맹점이 수익을 내는 구도를 만들려면 본사가 그럴 만한 체계를 갖출 때까지, 예를 들어 잘되는 점포가 100개 정도가 될 때까지 상당한 투자를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가맹점부터 모집하다 보니 가맹점에 고통을 주는 것이다.
김병준: 어떻게 해야 하나?
김승호: '가맹점 모집'이라고 써 붙인 프랜차이즈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잘되는 프랜차이즈는 그런 모집을 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아도 지원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본사 말만 믿지 말고 가맹점 주인을 5명 정도 만나 실상을 들어보면 판단이 설 것이다.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장밋빛 청사진에 현혹되어 프랜차이즈를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김병준: 오늘 감사하다. 성공 비즈니스를 위한 또 하나의 강의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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