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체육대회 못하는 학교

지금 학교에서는 체육대회를 할 수 없다. 앞으로 체육대회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 학생부에 기록된 체육대회 참가의 흔적을 지우느라 온 학교가 난리다. 학교에서 지워야 할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 단체로 '마라톤 대회', '문화재 지킴이 활동 보고대회'에 참여했던 것도, '교내 수학 경시대회', '교내 글짓기대회'에 참여한 것도 모두 지워야 한다.

그런데 학생부에 기록되어 있는 이런 대회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1, 2학년 때 선생님들이 기록한 내용을 3학년 담임이 임의로 고쳐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반당 평균적으로 100건이 넘는 내용을 일일이 찾아서 학생부 정정대장에 기록을 해야 한다. 그렇게 올려서 교무부장, 교감, 교장의 순서로 결재가 완료되면 다시 새로운 내용으로 수정을 해야 한다. 그런 엄청나게 단순하면서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학생부에 기록되는 내용은 놀랍게도 '체육대회'를 '체육행사'로, '수학 경시대회'를 '수학 경시행사'로 바꾸는 것이다. 어떤 학교들은 '수학 경시행사' 대신에 '수학 겨루기' 같은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둘 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체육대회'는 할 수 없고, '체육행사'는 할 수 있다는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이유는 학생부 기록에 대한 교육부의 새로운 지침 때문이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강조되면서 교내외 각종 대회가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교육부에서는 이미 몇 년 전에 교외 수상과 관련된 내용을 학생부 어디에도 기록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었다.(그래서 세계 수학올림피아드 수상자가 우리나라 명문대에는 합격할 수 없었던 일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작년 말에 교육부에서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나 각종 대회에 참여한 기록을 적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학생부 종합전형을 위한 교사 연수에서는 학생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교내 경시대회에 참여한 것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을 자세히 적어주라고 해서 적어 둔 것도 있고, 학술대회나 체육대회의 경우는 학생들이 자기소개서를 쓸 때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도록 단순히 참여한 사실을 적어 둔 것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학생부를 점검하면서 '대회'라는 명칭이 들어간 것은 예외 없이, 무조건 고치라는 교육부의 지침 때문에 이 난리가 난 것이다.

'체육대회'를 '체육행사'로 바꾼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 입시가 더 공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대신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을 위해 교사의 업무는 가중되었고, 학생부에 기록된 내용은 언제든 쉽게 바꿀 수 있는 신뢰성 없는 자료가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더 중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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