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동네에는 '수밭못'이 있어요. 삼필봉과 청룡산에서 바람이 불면 못물이 니트처럼 짜지는 못이지요. 그 못둑길 양쪽으로는 멍석딸기, 망초꽃, 삐삐풀이 우거져 있어 걷기에 지루하지 않은 길이에요. 여름 풀냄새가 머릿속을 환하게 하는 그런 길이죠. 그 길을 사람들이 낮밤 구분 없이 참 많이 걸어요. 사람들이 하도 걸으니 길이 명경(明鏡)처럼 환해졌어요. 옛날의 길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수단이었지만, 요즘의 길은 러닝머신의 벨트 같은 것이 되어버렸죠. 새벽의 못둑길에는 팔을 돌리며 걷는 사람, 박수치며 걷는 사람, 경보 선수처럼 빨리 걷는 사람, 심지어는 휴대용 중국산 라디오를 크게 틀고 안하무인으로 걷는 사람,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못둑길의 처음과 끝을 계속해서 왕복하는 사람, 걷는 사람들이 하도 열심히 걸어 몸살이 날까 걱정되지만, 사실은 길이 몸살을 앓고 있어요.
새벽에 못둑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오직 걷기 위해 걸어요. 길이 그냥 걷는 장소가 되어버렸어요. 걷기가 현대인들에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했던가요. 사람들은 걷기에 목을 맨 것처럼 보여요. 우리는 일에 묶여 있고 차는 길에 묶여 있어요. 하루의 어느 한 시간만이라도 자유롭게 길 위에 자신을 풀어놓지 않는다면 사는 일이 참 한심하겠지요. 못둑을 느긋하게 걷는 사람을 보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은 잘 보이지 않네요. 중대한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앙다물고 굳은 표정으로 빠르게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이쯤이면 '비장(悲壯)한 걷기'라고 할 만하지요.
위대한 예술가와 철학자들은 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하였다지요. 아테네에는 '소요(逍遙)학파'라는 공부 모임이 있어서 제자들과 스승이 함께 주랑(柱廊)을 걸으면서 공부를 했다고 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과 신전의 기둥들을 지나 숲 속을 향해 천천히 걷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네요. 대화와 사유와 걷기가 한 몸이 되는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휴대용 잉크병이 달린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며 걷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했다고 해요. 젊은 날의 프리드리히 니체도 혼자만의 산책을 즐긴 산책 중독자였어요. 를 쓴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고 걷기를 예찬했지요. 걷기는 살빼기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에요. 경보선수처럼 걷는 '아줌마식 팔 흔들기'가 좀 우스꽝스럽지 않나요. 내일 새벽엔 뒷짐을 지고 느린 걸음으로 못둑을 어슬렁거리는 당신을 만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저의 산책도 '사유의 리듬'으로 출렁이는 '산(生) 책(冊)'이 되고 말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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