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개소리

"어린 시절 개를 잡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동네 어른들이 개를 두들겨 패 실신시킨 후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개가 솥에서 튀어나와 뛰어다니다가 주인을 보자 그 앞에 앉아서 꼬리를 흔들더라.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개는 먹는 게 아니구나!"

어느 개그맨이 예전에 방송에서 한 말이다. 진짜 경험담인지, 지어낸 말인지 논란이 있었지만 사실 개만큼 인간을 따르는 동물도 없다. 개는 인간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다하고 우리나라 등 일부 나라에서는 제 몸마저 식량으로 제공한다.

1만여 년 전 개의 조상은 야생에서 사냥을 하는 것보다 인간에게 사육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선택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인간과 동거하면서 개는 동일 종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외양을 한 수백여 품종으로 진화했다. 인간의 기호와 필요에 의해 선택적 교배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데 따른 결과다.

인간과의 심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운 탓에 '개'라는 단어는 우리말에서 애꿎은 비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개새끼'라는 욕설이 대표적인 사례다. 많은 이들이 영어권의 욕 'son of a bitch'처럼 '개가 낳은 자식'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말 개새끼는 개(犬)와 상관이 없다. 개떡'개살구'개철쭉'개꿈'개나발'개수작'개죽음'개망나니라는 말에서 보듯 '개'는 '야생의, 질이 떨어지는, 헛된, 정도가 심한'이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로 자주 쓰인다. 따라서 개새끼는 '헛된 자식' '(남이 낳은) 가짜 자식'이라는 뜻의 모욕적인 표현인 것이다.

'개판 오 분 전'이라는 말도 그렇다. 여러 개들이 설쳐대는 것처럼 질서가 엉망이라는 뜻으로 오인되고 있지만, 이 말에서 '개'는 '뚜껑을 연다'는 의미의 '개'(開)이다.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6'25전쟁 때 부산에 모여든 피란민들이 밥을 배급받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어 난리통일 때 배급자가 "개판 오 분 전"이라고 외치며 배식 시작을 예고한 것에서 비롯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여름은 개들에게 잔인한 계절이고 더구나 며칠 후면 초복이다. 견공들로서는 스트레스받을 일이 많은 요즘일 텐데 교육부의 한 고위 공직자마저 "민중을 개'돼지로 취급해야 한다"는 막말로 염장을 질렀다. 이 땅의 견공들은 참 억울할 만도 하다. 만약 사람 말 알아듣는 개가 있다면 이렇게 짖을는지 모르겠다. "멍, 멍!(웬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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