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한 해에 3개 정도의 태풍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국가태풍센터의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 수 현황(1904~2015년)'에 따르면 이 기간에 총 345개의 태풍이 우리나라 인근으로 왔으며, 전체 90%가 7~9월에 집중됐다. 8월(125개)이 가장 많았으며, 7월(105개)과 9월(80개)이 그 뒤를 이었다. 아주 드물게 6월(23개)과 10월(10개)에도 오는 경우가 있었다. 한 해 평균 3개 정도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1976년에는 25개의 태풍 중에 6개가 우리나라를 통과해 가장 많은 태풍이 다녀간 한 해로 기록됐다. 우리나라에 기록적인 피해를 입힌 태풍을 살펴봤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최악의 태풍 루사와 매미
태풍 루사(RUSA)는 두 가지 기록을 가진 최악의 태풍이었다. 5조1천479억원이란 천문학적인 재산피해를 입혀 이 부문 1위에 올랐고, 2002년 8월 31일 하루 동안 강릉에 870.5㎜에 달하는 집중호우를 쏟아 가장 많은 비를 뿌린 태풍으로 기록됐다.
루사는 2002년 8월 23일 괌섬 동북동쪽 부근 해상에서 발생해 일본 남쪽 해상을 거쳐 30일 제주도 남남동쪽 해상으로 느린 속도로 북상했다. 31일에는 전남 고흥반도 남쪽 해안으로 상륙해 9월 1일 오후 속초 부근 해상으로 진출했다. 이 태풍의 영향으로 전국에는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 강수량은 제주도 산간지방 400~700㎜, 남해안 지방 400㎜, 강원도 영동지방 350~900㎜, 그 밖의 지방 20~350㎜를 기록했다.
이처럼 루사가 큰 피해를 끼친 것은 태풍이 북상할 당시 남해 상의 해수온도가 평년보다 높아 강한 태풍의 세력을 유지하면서 우리나라로 접근했기 때문. 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민기홍 교수(천문'대기과학 전공)는 "우리나라 남해안에 상륙한 후 내륙을 지나면서도 비교적 강한 세력을 유지한 원인은 상층의 편서풍이 약했고, 동해 상에 고기압이 놓여 있어 이 태풍이 동쪽으로 전향하지 못하고 계속 북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제14호 태풍 매미(MAEMI)는 9월 6일 괌섬 부근 해상에서 발생해 12일 경남 사천시 부근 해안으로 상륙했고, 북북동진해 울진 부근 해안을 통해 동해 상으로 진출했다. 매미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태풍 중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태풍의 오른쪽 반경에 위치한 대구를 비롯해 부산, 마산 등 경상도 일대에 큰 피해를 입혔다.
남해안 상륙 시 중심기압은 약 950헥토파스칼(hPa)로 주변 기압계와 비교했을 때 기압경도력이 매우 강했다. 이 때문에 제주와 고산의 최대순간풍속이 60.0m/s를 기록해 우리나라 관측 이래 최대순간풍속 극값을 경신하는 등 강한 바람으로 한반도를 휘몰아쳤다. 또 태풍이 남해안에 상륙한 시간과 만조 시간이 겹치면서 강풍이 지속적으로 해안지방을 향해 불어 들어, 높은 파고로 인해 해안지방이 침수되면서 더 큰 피해를 유발했다. 이때도 131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4조2천225억원의 막대한 재산피해가 났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루사와 매미는 태풍 명단에서 퇴출돼 각각 누리와 무지개로 이름이 바뀌었다.
◆태풍 사라를 기억하나요
우리나라에 영향을 입힌 태풍 기록을 살펴보면 1959년에 불어닥친 태풍 사라(SARAH)의 이름을 찾기는 쉽지 않다. 849명의 인명피해를 내 가장 인명피해를 많이 낸 태풍 부문 3위에 오른 것이 전부다. 그러나 태풍 사라는 60대 이상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끔찍한 태풍으로 남아 있다.
태풍 사라와 관련된 한 잡지 기사를 소개한다.
"1959년 9월 17일.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그날, 하늘은 티없이 맑았다. 배를 주리던 고난의 시기였지만 동쪽 하늘에 둥글게 올라오는 보름달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환했다.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다음날 조상에 올릴 음식을 보자기에 싸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사이판섬 해역에서 발생한 14호 태풍 '사라'가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맹렬한 기세로 한반도를 향하고 있었다.
1959년 9월 17일 최대풍속 초속 85m, 중심부 최저기압 952헥토파스칼에 이르는 초대형 태풍 사라가 제주를 거쳐 남해안을 강타했다. 11일 처음 발생한 태풍 사라는 많은 비를 뿌리며 한반도를 향해 다가왔지만 중앙관상대는 점차 세력이 약화될 걸로 판단해 버렸다. 하지만 17일 새벽 제주도에 상륙한 후 동이 트면서 초속 40m의 강풍으로 변하며 사나워졌고, 산더미 같은 해일과 폭우를 동반하며 섬 일대를 난타했다. 소형 자동차들은 운행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고 모든 행정 기능은 순식간에 마비됐다. 평생을 섬에 살며 바람과 싸워온 제주도민들이었지만 초가지붕과 함께 삶의 터전이 날아가는 강력한 태풍 앞에서는 그저 나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제주도를 통과한 태풍 사라는 남해안으로 방향을 틀며 부산과 영남지역 등 낙동강 일대를 진흙과 흙탕물로 변모시켰다. 추석을 맞아 성묘를 위해 길을 나서던 주민들은 도로가 끊어져 고립됐고, 강물은 과수와 농작물로 뒤덮였다. 거제도 앞바다의 절경이었던 한 쌍의 촛대바위 중 신부를 상징하는 촛대바위가 두 동강이 났고, 부산 산복도로의 판잣집 중 절반 이상이 바람에 휩쓸려 맥없이 날아갔다. 몰아치는 파도와 해일로 오륙도의 형체마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사라호는 17일 오후 대구를 거쳐 동해안으로 빠져나가 소멸됐지만 사망'실종 849명의 인명피해와 이재민 37만3천459명을 남겼다. 손실액 또한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21일 이승만 대통령은 동포애를 발휘하여 이재민을 돕자는 내용의 특별 담화를 발표했고, 이후 전 국민적인 모금 운동이 시작됐다. 국가적인 재난 사태에 처음으로 군 병력이 투입된 것도 이때다."
계명대 김해동 교수(지구환경학 전공)는 "수많은 태풍이 우리나라를 덮쳤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사라를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기억한다. 이는 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어려운 시절, 민족 명절인 추석에 발생한 것이 주된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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