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가 먼 죄 지었어예, 살려주이소" 통곡의 광장

성주 사드 철회 상경 집회…매일신문 기자 동행 르포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성주 군민 사드(THAAD) 반대 서울 상경집회에서 김항곤 성주군수가 삭발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성주 군민 사드(THAAD) 반대 서울 상경집회에서 김항곤 성주군수가 삭발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성주군 해병전우회 관계자들이 파란 리본을 가슴에 단 성주 군민들만 입장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주군 해병전우회 관계자들이 파란 리본을 가슴에 단 성주 군민들만 입장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언론사 카메라 기자들이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경북 성주 군민 사드(THAAD) 배치 반대 상경 집회를 취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언론사 카메라 기자들이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경북 성주 군민 사드(THAAD) 배치 반대 상경 집회를 취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생체실험 강요하는 정부는 각성하라."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드 배치 철회하라."

뜨거운 태양이 정수리를 내리쬐어도, 아스팔트의 열기가 온몸으로 치고 올라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도 성주 군민들의 사드 배치에 대한 분노는 막아내지 못했다.

성주 군민 2천여 명은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사드 배치 철회를 위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 9시에 각 읍'면별로 출발했다.

사드 배치 철회 성주 투쟁위원회는 이날 군민들을 서울로 실어나르기 위해 읍'면별로 모두 52대의 버스를 준비했다.

참외 농사를 짓는 농민들을 비롯해 성주군바르게살기협의회, 이장상록회 등 군민들은 모두 일손을 놓고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을 위해 버스에 올랐다.

기자도 따라나섰다. 성주 선남면에 준비된 버스로 군민들과 함께 이동했다.

오전 8시 30분쯤 선남면 참외공판장에 모여든 군민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한참 동안 떠들썩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조용해졌다.

이광호 선남면 상록회장이 이날 일정을 소개하고 일행들에게 "관광이 아니고 집회 때문에 서울로 가니 정말 마음이 무겁다. 오늘은 과격하거나 폭력을 쓰는 것은 절대 안 되기 때문에 술은 한 방울도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어 버스 안에서는 질서유지를 위한 행동지침이 쉼 없이 전달되고, 구호 제창과 농민가 등 노래 연습을 했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서울역 광장. 이미 다른 읍'면에서 도착한 군민들이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있었다.

군민들은 왼쪽 가슴에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색 리본을 착용하고, 파란색으로 제작한 머리띠를 두르고, 파란색 손 현수막과 태극기를 흔들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사드 배치 철회하라"고 외쳤다.

이날 학생들의 참여는 없었다. 외부인과의 접촉은 원천봉쇄됐다. 언론사가 군민들을 인터뷰하는 것도 차단됐다.

읍'면별로 선발된 질서유지팀과 성주군 해병대전우회, 성주군 태권도협회 회원 등 300여 명은 집회 때 불미스러운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군민들이 앉아 있는 곳을 에워쌌다.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치고, 인간띠를 형성해 군민들의 평화 집회를 유도했다.

간단한 내빈 소개가 끝나면서 집회는 바로 진행됐다.

김항곤 성주군수와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 군민 등 20여 명이 삭발을 하는 동안 여성 군민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집회가 열리는 인근에서는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야유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군민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상황이지만 군민들은 의연하게 대처하며 끝까지 질서를 유지했다. 과격한 행동이나 폭력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성주 금수면에서 온 한 여성은 행사가 끝날 때쯤 절규했다.

"성주 농민 한 번만 살려주이소. 우리한테 왜 이캅니꺼. 우리가 먼 죄를 지었으예."

울부짖는 목소리가 기자의 고막을 마구 때렸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기자는 그 목소리 때문에 가슴이 한없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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