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방자치는 20년을 넘어 성년이 됐지만 여전히 무늬만 자치다. 견고한 중앙집권적 국가경영 체제 탓에 지방자치의 핵심인 지방분권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에는 지방자치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이처럼 지방자치가 제도적'운영적 측면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 보니 '지방분권과 주민참여'의 새 틀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방자치, 지방분권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지, 지방분권을 위해선 무엇을'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망은 어떤지 등 우리나라 지방분권의 현실과 전망을 김규원 대구시지방분권협의회 의장, 곽대훈 국회의원, 이주석 대구경북연구원 원장 등 3명의 전문가에게 들어봤다.
-지방분권, 꼭 해야 하나.
▶김규원(이하 김)=지방분권은 주민 스스로 자신의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이 위임한 주권을 관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런데 위임받은 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중심제를 강화하면서 마치 모든 권력이 대통령한테 집중돼야 국가가 발전한다는 인식을 낳았다. 현실적으로도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핵심부가 위치한 수도권으로 인재와 재력이 몰려 중앙집중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 20년이 지났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악화일로이고, 지역발전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중앙권력에 기대야 해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그 원인이 뭔가. 어떻게 해야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나.
▶이주석(이하 이)=지방자치제도 시행 후 지방재정 규모는 증가하고 있지만 국세에 비해 지방세의 신장성이 떨어지고 사회복지수요가 늘어나면서 국고보조금이 증가, 재정자립도가 낮아지고 있다. 먼저 국내외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재산과세 중심의 지방세 구조 때문에 지방세수가 크게 증가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회복지비 지출 증가 등 지방자치단체 처리 사무가 증가함에 따라 국고보조금이 지방자치단체의 자체수입 증가보다 커서 재정자립도가 낮아지게 됐다. 재정자립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선 지방소득세 독립세 전환, 지방세 비과세'감면 축소, 신세원 발굴, 지방세'지방세외수입 체납징수 강화 등 자주재원을 확충해야 한다.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해선 재정분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정분권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먼저 국세와 지방세 간 합리적 조정을 통해 지방세 비율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중앙과 지방 간 사무조정에 따른 지방비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소비세율의 단계적 조정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세에 부가해 징수하고 있는 국세의 지방세 전환, 지방복지수요 충족을 위해 주요 국세에 부가세 형태의 지방세목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올해 일몰되는 감면 제도들을 재검토해 내년까지 지방세 비과세'감면율을 국세 수준인 15% 이하로 축소해야 한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감면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비과세'감면율도 축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자원시설세와 레저세 등 과세대상 확대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폐기물 매립'소각시설, 해저자원 개발,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 카지노, 복권 등에 대한 과세를 추진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장을 하다 국회의원이 됐다. 앞으로 지방분권과 관련해 어떤 의정 활동을 할 계획인가.
▶곽대훈(이하 곽)=지방화'분권화는 시대적 조류다. 거부하거나 거스를 수 없다. 지방정부가 내생적 발전을 스스로 이뤄나갈 수 있도록 권한과 재원을 이양해야 한다. 공공서비스는 국가가 아니라 지방정부가 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초단체가 사무를 처리하고, 사무 성격상 기초단체가 처리하기 힘든 사무에 한해 광역지자체와 국가가 처리하는 상향식 권한배분방식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
과거 지방자치발전위원회 등에서 지방이양을 결정해 대통령 재가까지 거쳤지만 개별 입법 미비로 미이양 상태로 남아 있는 사무를 대상을 일괄 법제화하는 (가칭)지방일괄이양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에 포함된 이양사무 자체가 대부분 행정 절차적 권한, 사무처리에 관한 권한으로 실질적 권한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지만 첫 단추를 끼운다는 심정으로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지방분권이 헌법 정신임을 명문화할 필요도 있다. 헌법 제1조 제3항을 신설해 '대한민국은 지방분권에 기초한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명시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분권의 하나로 주민생활과 직결되는 교육자치와 자치경찰제, 특별행정기관의 지방이관 등을 중앙에 요구하고 있다.
▶곽=교육자치, 자치경찰제, 특별행정기관의 지방이관 등은 모두 지방분권 강화의 하나로 빠른 시일 내에 제도가 정비돼 실시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중앙집권적인 국가경찰체제를 중심으로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경찰활동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현 국가경찰체제는 지역 치안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지역치안에 대한 자기책임성이 부족해 치안행정에 대한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결여돼 있다. 지역 실정에 적합한 경찰 치안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자치경찰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행정기관의 지방이관 또한 지방 중복 사무, 현지성이 강한 사무, 집행적 사무들은 적극 지방으로 이양돼야 하고, 사무뿐 아니라 조직과 재정도 이양돼야 한다. 지방자치 영역에 있어 교육행정이 분리돼 지역특화 교육체계 구축에 도움이 됐지만 지방자치와 교육자치의 이원화로 인해 지자체가 교육과 보육문제에 접근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지방분권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 확산과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김=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많이 알수록 지역에 대한 애착은 더 커진다. 지방분권도 마찬가지다. 지방분권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커질수록 지방분권운동의 힘도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그런데 지방분권을 말하면, 잘 모르거나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심지어 지방분권이 이뤄지게 되면 중앙으로부터 소외되고, 지원도 받지 못해 '큰일 날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적잖다. 이러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대구시지방분권협의회가 지방분권에 관한 다양한 교육 및 홍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홍보용 책자와 교육용 교재를 발간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웹툰 제작도 추진할 계획이다. 지난달부터는 '찾아가는 구군 분권 토크'도 열고 있다. 일방적인 대중 강연이 아니라 질문응답식으로 청중과 호흡하는 형태여서 반응도 좋다. 무엇보다도 지방분권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는 지역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도권 언론사들이 지방분권 담론 형성을 억압하고 의제 선정을 방해하는 데 가장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지방분권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느냐.
▶김=한두 가지 노력만으로 지방분권이 실현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가장 먼저 헌법 개정을 통해 우리나라가 지방분권 국가라는 것을 천명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헌법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국회 안에 지방분권특위를 상설해 관련 법령 제'개정 등 정비해야 한다. 또 제대로 된 지방분권을 위해선 적어도 기초자치단체 선출직은 정당공천배제를 통해 지역혁신을 소신껏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방분권은 위로부터의 동정이나 시혜가 아니다. 유권자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가야 하는 역사적 과제이자 시대적 책무다.
▶곽=글로벌 시대에 세계 각국은 '지방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기조 아래, 대내적으로 지방분권화를 통한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개헌 문제가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고 나를 포함한 몇몇 단체장 출신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과정에서 지방분권 개헌도 포함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 기회에 중앙집권적 구도에서 제정되었던 헌법을 '지방분권형 헌법'으로 개정해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시대를 열 수 있는 기본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이=성공적인 지방분권의 실현을 위해서는 실질적 재정분권 확립, 중앙과 지방 간 명확한 사무배분 등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자주재원 확충 등을 통해 지방재정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한편 지방재정의 건전성 강화를 위한 자체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지방이양일괄법 제정 등을 통해 중앙권한 및 사무를 지방이양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지역 주민의 의사를 반영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지방분권의 효과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인 만큼 지방분권에 대한 지역 주민의 관심을 높이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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