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친절한' 리디아 고 '짜증맨' 필 미켈슨

이번 주 '내 골프인생 대박사건'은 한 주 쉬는 대신 지난 주말 전 세계 골프팬들을 사로잡은 세계 톱랭커의 남녀 골프 선수를 대비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LPGA 마라톤 클래식대회에서 시즌 4승을 달성한 뉴질랜드의 리디아 고(19)와 PGA 메이저 대회인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스웨덴의 헨릭 스텐손(40)과 멋진 승부를 펼치다 준우승에 그친 미국의 필 미켈슨(46)이 그 주인공이다.

골프담당 기자로서 주말 집에서 휴식하며 두 대회의 3, 4라운드를 모두 지켜봤다. 리디아 고는 태국의 아리아 주타누간, 한국의 이미림과 연장 4라운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필 미켈슨 역시 3위권을 10타 안팎으로 따돌리며 헨릭 스텐손과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매치 플레이 같은 명승부를 펼쳤지만 결국 졌다.

TV를 통해 두 대회를 보면서 아주 흥미롭게 캐치한 대목은 사실 흥미로운 경기 내용이 아니었다. 경기 중에 두 남녀 선수가 보여준 경기 매너와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리디아 고는 마지막 날 한국의 김효주까지 4명의 선수가 초접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갑자기 옆으로 다가와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극성 팬에게 한국어로 "경기 끝나고 해드릴게요"라고 친절하게 말하는 모습이 잡혔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마음속에 부처가 살고 있나.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 저렇게 친절할 수 있을까?" 이제 만 19세 소녀의 마음엔 '한없이 너그러운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3명이 연장 4라운드까지 혈투를 벌이는 동안에도 리디아 고는 여유롭게 즐기는 듯했다. 연장 4라운드에서 두 경쟁 선수가 다소 흔들리자, 결정적 버디 한 방으로 우승을 거머쥐는 모습도 압권이었다. 리디아 고의 침착한 경기 운영 능력을 보면, 19세가 아니라 세상 도를 다 닦은 91세 같다.

반면 필 미켈슨은 골프계의 신사가 아니라 '짜증맨'의 모습을 보였다. 헨릭 스텐손과 초접전 상황에서 방송 카메라맨이 자신을 너무 가까이서 찍는다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욕설에 가까운 험악한 멘트를 날리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플레이에 집중해서 꼭 우승하고 싶은 필 미켈슨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리디아 고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어린애' 같은 모습이었다. 두 남녀 선수의 대비되는 이 두 장면은 경기 외적 부분이지만, 리디아 고의 우승과 필 미켈슨의 패배를 예상케 했다.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39주 연속 LPGA 세계랭킹 1위, 다승 및 상금왕 등에서 독보적 '퀸'(Queen)의 위치에 있는 리디아 고는 아무리 봐도 연구대상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 DNA라는 사실이다. 본명은 고보경. 1997년 4월 24일 서울에서 태어나 6살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21세기 초에 '골프 퀸'으로 우뚝 선 리디아 고는 천재적인 골프 재능도 갖고 있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는 멘탈과 여유는 아마도 부모와 조부모'외조부모의 넉넉한 품성 덕분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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