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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팽개친다고 새가 물러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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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개'라는 도구가 있다. 지방에 따라 '팽개' '팽매'라고도 한다. 어른 팔길이 만한 대나무의 끝을 네 갈래로 쪼갠 후 나무토막을 가로질러 물리고 동여맨 도구다. 이를 흙더미에 찔러 흙이나 돌멩이를 잔뜩 끼운 후 휘두르면 농작물을 해치는 새를 쫓을 때 유용하다. '내팽개치다'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현재 우리 국민은 권력의 마구잡이 팽개질에 쫓기는 새 꼴이다. 불황에 보통사람은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정부는 신공항 백지화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일방통행식 정책으로 민심을 내동댕이쳤다. 게다가 고위공직자의 온갖 망언과 추문은 무더위에 화롯불 지피는 격이다. 따지고 보면 처지를 한탄할 쪽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다. 고난과 비난을 받고 있는 장본인은 대통령도, 근거 없는(?) 의혹과 음해에 시달리는 고위공직자도 아니다. 바로 국민이다. 여론을 잘 살피라고 충고하는데도 대통령과 그 주변은 자신들을 비난하고 발목 잡는다며 정색을 하고 있다.

국민 뜻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정한 사드 배치는 결국 5만 성주 군민의 저항을 불렀다. 지금의 민심은 사드 배치의 부당성이나 거창한 국가 안보 문제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마치 개울에서 물고기 몰듯 정책을 주무르고는 느닷없이 '성주가 적지'라고 발표한 청와대와 국방부에 대한 불만이 분출한 것이다. 주민 안전과 맞물린 중대 정책을 결정하면서 묻지도 않고 절차와 과정을 아예 무시한 데 대한 저항이다. 대통령만큼 국민도 나라와 국가 안보를 걱정한다. 이런 국민을 설득하지도 가까이하지도 않는 불통 권력과 무능 정부를 누가 신뢰할 수 있나.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우병우 민정수석이나 진경준 검사장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은 거의 막장 드라마다.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불거지는 의혹에 국민은 아예 낙심 단계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국민행복시대' 구호가 민망할 정도다. 국민 불행지수만 높이는 이 같은 공직자 추문은 말이 나오기 무섭게 말끔히 정리하는 게 국정 운영을 책임진 대통령이 할 일이다. 그런데도 "터무니없다"고 한마디로 외면하니 정권 위기론까지 나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위기의 뿌리는 지도층의 오만과 무능 그리고 부패다.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들을 생각도 않고 되레 "대안이 있으면 내놓으라"고 다그치면 그냥 민심이 등돌리는 일밖에 더 있겠나. 대통령을 흔드는 것은 국민과 야당의 저항과 비난이 아니다. 권력에 바짝 붙어 있는 국가 지도층과 대통령 자신이다. '결백 타령'만으로는 왜 권력이 흔들리는지, 왜 민심이 불안한지 답을 얻을 수 없다.

25일부터 박 대통령은 휴가다. 1년 7개월 남은 임기나 국정 난맥상을 생각하면 잠시나마 속 편하게 쉴 상황은 아닐 것이다. 단 며칠이라도 국정을 곰곰이 되돌아보고 민심이 무엇인지 살펴보기를 권하고 싶다. 휴가가 끝난 후에도 계속 유별난 민심 탓을 하고 흔들리지 않고 갈 길을 간다면 절름발이 정국은 불을 보듯 뻔하다.

'화신이 죽으니 가경이 배불리 먹었다'(和王申跌倒 嘉慶吃飽)는 말이 있다. 18세기 말 청나라의 관리 화신이 죽자 백성이 이렇게 외치며 기뻐했다고 한다. 건륭제의 최측근이었던 화신은 총애를 무기로 재정권과 군권, 인사권까지 독점하며 백성을 억압하고 수탈했다. 이 때문에 그는 중국 역사상 가장 타락한 관리로 찍혔다. 건륭이 죽자 가경제는 화신을 투옥하고 자결을 명했다. 백성을 팽개치고 나라를 어지럽힌 권신의 말로다. 과장된 비유이나 지금 국민의 심정과 상황이 그렇다.

현 단계에서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국정 혼란과 국가 위기 상황을 넘기는 지혜와 빠른 판단력이다. 국정과 민생이 더 격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에 결단해야 한다. 파면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다"라고 망발을 했지만 그래도 잘난 1%보다 하늘에 더 가까운 것은 99% 보통사람의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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