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취'를 주제로 다룬 TV 건강 프로그램을 무척 인상 깊게 봤다. 전문가의 다양한 설명과 사례를 통해 마취를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올바른 의미가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는 '마취'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범죄영화에서 손수건에 마취제를 묻혀 사람의 입을 막아 정신을 잃게 만드는 내용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했고, 심지어 수면제를 마취제로 오인한 엉터리 보도도 있었다. 이 같은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학회를 중심으로 과의 명칭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고, 수년 전부터 '마취'는 '마취통증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됐다.
우리나라 수술 건수는 연간 170만 건 정도 된다. 마취는 수술과 더불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의료 행위다. 특히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위험한 수술인 심장수술과 뇌신경수술, 이식수술을 받는 노년층도 늘고 있다. 이런 환자들은 마취를 시작해 수술이 끝날 때까지 마취의(痲醉醫)가 환자의 생체 징후 등을 실시간으로 감시해야 하고, 이상이 발생하면 즉시 바로잡아야 치명적인 결과를 막을 수 있다.
요즘 각종 내시경 검사나 영상 촬영, 치과 치료에서 활용하는 진정마취는 환자들의 통증과 불안감, 두려움을 없애 시술자와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우리나라 산모의 90%가 받는 경막외마취에 의한 무통분만도 출산에 대한 공포와 통증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있다.
20여 년 전 필자의 전공의 시절과 비교하면 환자 안전을 위한 마취기와 마취약제, 각종 감시 기구들이 첨단화되고 많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마취사고는 종종 일어나는데, 마취의가 참여하지 않는 수술이나 시술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정맥마취제인 프로포폴은 의식은 빠르게 없애 주지만 통증을 없애 주진 못하기 때문에 강력한 진통 효과를 가진 마취약을 따로 써야 한다. 이런 경우 일반적 상용량에서도 혈압을 떨어뜨리고 무호흡을 유발하는 빈도가 매우 높다. 이렇게 시술 중에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사고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는 현대 의료에서 비전문가에 의한 마취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강력한 시정이 필요하다. 수술장의 감시 장비가 아무리 좋더라도, 수술 전후에 생길 수 있는 환자의 위험한 상황들을 즉시 인지하고 해결할 능력을 가진 마취의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의료 수준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의료계도 더욱 전문화된 의료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화된 의사의 역할이다. 마취의가 없는 수술을 받으려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 하루속히 법적'제도적으로 재정비하고, 의료계 종사자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것이 안전한 마취를 받기를 원하는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지름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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