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하는 날 교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9월에 윈 ○○라는 베트남 학생이 3개월간 위탁학생으로 우리 반에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윈 ○○는 우리말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가 전혀 안 되는 학생이라고 한다.
작년에 내가 가르치는 아이 중에는 다문화 학생이 3명 있었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은 또래에 비해 키가 작고 말수가 아주 적은 아이로 고학년인데도 불구하고 한글 맞춤법에 맞지 않는 글자를 많이 사용하였다. 학급의 아이들은 성향이 착하다 보니 대체로 잘 이해하고 어울리려 했으나 그 학생은 친구들과의 관계가 서툴렀다. 그러던 중 2학기 들어 다문화 행사 기간에 글쓰기대회가 열렸다. 평소 맞춤법에 맞지 않게 글을 쓰고 공부에도 자신이 없었던 그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긴 분량의 글을 썼는데 글 속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 있고 작은 체구와 달리 소신이 있어 놀랐다.
동학년 선생님들은 학급에서 내로라하는 글을 뽑아 오셨다. 다른 반의 글은 우리나라 아이 입장에서 다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쓴 글이었고, 난 다문화 아이 입장에서 외톨이처럼 삶을 헤쳐 나가는 그 아이의 글을 올려놓았다. 선생님들께 나의 관점을 이야기했다. 글자가 비뚤비뚤한데다 틀린 것투성이라 읽기가 힘들지만 곱씹어 읽다 보면 아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 때문에 깊은 울림이 올 것이라 했다. 선생님들은 차례로 작품을 읽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선생님들께서 그 아이 글의 진정성을 인정해 최우수로 선정했다.
꼭 하고 싶은 말/ 천천히 생각날 때// 느리게 말하는 것/ 참아 달아 애원한다// 친구들 자기 엄마 만나면/ 오래 보지 않기 부탁한다
키 작고 힘 약해도/ 슬퍼 울면 안 된다// 이 세상 태어난 사람/ 기뻐 웃으면 다 된다// 아이가 더듬거리며 한 말/ 경전처럼 받아쓴다
-'쑤엉 씨(氏) 딸' 전문
집에 돌아와 그 아이의 생각을 작품으로 남기고 싶어 시조 한 편을 적었다. 아이는 우리말이 서툴러 단어를 생각하며 느리게 말하는데 친구들은 끝까지 경청해 주는 성의가 부족하고 어머니와 길을 나서면 조금 다른 외모 때문에 주변인들이 너무 길게 눈길을 주고 수군거리는 것이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키 작고 힘 약해도 슬퍼 울면 안 된다며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축복임을 당당하게 말했다. 아이지만 삶을 관조하는 태도가 어른 같기도 하고 심지어 성인(聖人)처럼 느껴져 참으로 뭉클했다.
9월에 베트남 아이 윈 ○○가 오면 6학년 아이들이다 보니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외모며 행동방식을 지나치게 관찰하고 떠들썩한 날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지독한 관심은 당사자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서로 통하는 것이 없더라도 겉만 보고 섣불리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평가하지 말고 진심으로 들여다보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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