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대통령밖에 안 보여

"안 된다. 못 한다. 어렵다."

다들 죽겠다고 난리인데 그들의 화법은 한결같다. 폭염으로 차오른 열기보다 치밀어 오르는 울화가 더 견디기 힘들다.

그래도 대통령의 한마디가 있어서 좀 낫다. 한 말씀 하시면 장'차관들의 안 된다는 말은 온데간데없다. 임명직과 선출직의 차이인가? 임명직 관료들은 민심은 외면해도 임면권을 가진 청와대만 보고 있으면 되고, 선출직인 대통령은 표를 가진 민심과 여론을 살펴야 한다는 건가? 결국 눈 가리고 귀 막은 정부를 움직이는 건 민심보다는 청와대인가 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국민들을 향해 보였던 단호함과 결연함은 보이지 않는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도 안 할 것 같던 자세는 순전히 대(對)국민용이었다. 성주 사드 배치지역 문제가 그랬고, 전기요금 누진제가 그랬고, 대구공항 이전 문제가 그랬다. 국방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의 반응은 어찌 그리 복사본처럼 같은지.

"제3 지역 검토 결과 부적합하다"던 국방부는 대통령의 "성주군이 추천하는 새 지역이 있다면 면밀히 검토, 조사하겠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검토 가능'으로 입장을 뒤집었다. 그러니 신뢰를 잃지. 지금은 당초 최적지라고 했던, 성산포대는 완전히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지역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민심을 안중에 두지 않았고,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은 당연한 결과이다. 동네 사람들 몇몇 머리만 모아도 더 나은 장소가 수두룩한데 도대체 뭘 가지고 최적지라고 했는지.

전국이 폭염으로 설설 끓는데도,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로 떠 죽겠다는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산자부는 철옹성 같았다.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력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블랙아웃을 걱정한다는 엄포였다. 산자부의 그 말이 국민들을 더 덥게 만들었다. 그러나 "집에서 냉방기도 마음대로 못 쓰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산자부는 하루 만에 표변했다. 전기요금 경감안이 발표됐다. 그리고 광복절 연휴 사흘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전력 대란 우려는 사실이 아니었다. 전기요금 고지서가 무서워 에어컨 리모컨을 쥐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서민들 생각은 해봤는지 궁금하다. 하루 4시간만 에어컨을 틀면 요금 폭탄은 없다고? 4시간만 에어컨을 켜고 나머지 시간은 헉헉대라고? 산자부 사무실은 하루 4시간만 에어컨을 튼다는 건가? 가정용이 전체 전력 사용량의 13%밖에 차지하지 않고, 가정용 최대 사용 시간이 밤이라서 전력 대란 우려가 없다는 점을 왜 산자부 장'차관, 실'국장들만 모를까?

대구공항 이전 문제도 그렇다. K2도 못 옮기고, 신공항도 안 되는 상황. "대구공항은 군'민 공항을 통합이전해 민과 군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라고 한 대통령의 한마디가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국방부는 K2 단독 이전을 받아줄 곳을 찾지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는 몰라도 물어보나 마나 '어렵다'고 했을 것이다. 국토부는 민간공항 이전에 예산 지원은 형평성 차원에서 '불가능하다'며 팔짱을 끼고 있었을 게 뻔하다. 대프리카가 정말 아프리카가 될 뻔했다.

이번에는 교육부다. 말복인 어제 전국 초'중'고교가 개학을 했다. 수업 일수 때문에 개학을 해야 한단다. 언론은 '폭염보다 더 무서운 수업 일수'라고 했다. 학교에서도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잘 틀지 못한다는데, 애들 땀띠나 나지 않을까. 유행어가 된 '무엇이 중헌디'라는 추궁과 질책을 받아도 싼 사람들이다. 복더위는 피하고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23일)쯤 개학해야 하나를 고민한 이가 교육부에는 아무도 없었을까? 며칠 더 푹푹 찐다면 이번에도 대통령이 나서줄까?

국민들도, 관료들도 모두 대통령의 입만 쳐다본다.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나마 대통령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임기 말 다들 대통령 눈치만 보려 들 텐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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