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赦免)의 역사는 고대 중국까지 거슬러 오른다. 사면이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은 한나라 때로 추정된다. 한구의(漢舊儀)는 천조(踐祚'임금의 자리를 잇는 것) 개원(改元'연호를 바꾸는 것) 입후(立后'왕후를 봉하여 세우는 것) 건저(建儲'왕위 계승자인 황태자나 왕세자를 정하는 일) 등 네 가지 경사에 사면을 하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사면 제도를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신라가 25년(유리왕 2년) 사면을 단행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문무왕 9년(670년) 때는 삼국통일의 대 위업을 기념해 사했다는 대사령의 사령문이 전해진다. 그렇다고 맹목적인 사면은 없었다. 한나라를 연 고황제는 재위 12년간 모두 9번만 사면을 실시했고, 제2대 혜제도 9년 동안 단 한 차례만 사했다고 전한다.
사면을 경계한 이유는 명확했다. 사면을 자주 하면 법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관중은 "사면을 남발하면 오히려 범죄가 더 늘어나 감옥이 찬다"고 했다. 당 태종 때 구양수는 '잘못된 사면은 임금과 백성 모두를 해치는 행위'(上下交相賊)라고 했다. 태종 또한 '사면이라는 것은 소인의 다행이요, 군자의 불행'(小人之幸 君子之不幸)이라고 경계했다. 촉 제갈량은 10년이나 사면령을 내리지 않아 번성했지만 양 무제는 해마다 2~3차례씩 사면해 나라가 끝내 기울고 말았다.
조선 태종 때 대사헌 이지가 올린 상소는 오늘날도 새길만하다. "사면이 잦으면 악한 짓의 마음이 고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면날만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중종 때 민세량의 언급도 같다. "죄가 있다면 절대 사면해서는 안 된다. 죄지은 자들이 반성은커녕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사면이 있을 것'이라면서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8'15특사를 단행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풀려났고 교통사범 등 220만 명이 특별감면조치를 받았다. 재벌이 특사로 풀려난 것은 어김이 없다. 2000년 이후 죄를 지어 선고가 확정된 대기업 총수 또는 경영진은 44명에 달하지만 이들이 교도소에서 보낸 시간은 평균 20개월도 안 된다. 죄를 짓고도 사면만 손꼽아 기다리다 나오는 것이다. 이들이 사법 정의를 중시할 리 없다. 큰 죄를 지은 재벌이 이럴진대 '작은' 죄를 지은 교통사범도 마찬가지다. 교통사범을 대규모로 특사한 이듬해면 틀림없이 교통사고가 증가했다는 것이 이를 웅변한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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