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호를 탔으니 아마도 10년은 더 된 듯하다. 옆 좌석에 앉은 한 노신사가 패션잡지를 뒤적이고 있던 필자에게 커피 한잔과 함께 말을 건넸다. "패션디자이너신가요?" "예, 무용의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자 마침 잘 만났다는 듯 초등학교 6학년인 외손녀가 무용 전공을 준비하고 있으며, 무용 의상을 사 줬는데 100만원이 훨씬 넘더라며, 춤을 추는 3분 동안 입는 의상비가 왜 그리 비싸냐고, 낭비가 아니냐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손녀딸이 당신이 맞춰준 예쁜 옷을 입고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모습을 기대하며 공연장, 즉 콩쿠르장을 찾으셨던가 보다.
3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포즈 몇 개를 취하고는 '휙' 들어가는 손녀를 보며 무용 비전공자인 할아버지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말씀드렸다.
"우선 무용 의상은 중고로 또 저가로 대여할 수 있는 있습니다. 무용 의상은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무용수의 체형까지 보완해줘야 하기 때문에 단번에 완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작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그만큼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무용수는 3분이라는 시간을 위해 수백, 수천의 시간을 썼으며, 그 3분의 시간이 무용수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그리 힘든 춤을 춰서 무엇이 되냐"고 물었다. 다시 말씀드렸다. "무용을 해서 성공하면 돈과 명예를 함께 누리는 프리마돈나가 되기도 하고, 드물게는 후학을 키우는 교수나 교사가 되기도 하며, 저처럼 무용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살 수도 있습니다. 무용과 관계없는 일을 하며 살게 되더라도 무용은 배울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무용은 몸으로 뭔가를 단순히 표현하는 것을 넘어 종합예술입니다. 공연을 이끌고 가는 대본을 이해하기 위한 문학적 감성이 뒷받침돼야 하고, 조명'의상'무대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미적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또한 무용 작업을 하면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며 남을 이해하고 나를 낮추는 법을 터득하는 등 인간적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오늘 참 좋은 자리였다며 웃으셨고, 당신의 차 운전기사를 시켜 나를 기차역에서 목적지까지 태워주기도 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할아버지의 손녀딸이 프리마돈나가 됐는지 교수의 꿈을 갖고 박사 과정을 수련 중인지 아니면 도중에 꿈을 접고 나처럼 무용의상을 깁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2016년 서울의 예술인 50%가 월수입 100만원이 되지 않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단다. 이게 용돈이 아니라 한 가구의 생활비라면 어떨까. 그리고 서울이 이런 상황인데 지방은 하물며…. 다시 그 노신사를 만나면 10년 전처럼 무용이라는 진로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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