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만 시간을 열 배는 보내고도

15년 전쯤이었다. 존경하는 노스님께 법복을 지어 드린 적이 있다. 정성 들여 광목을 염색하고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어 드렸다. 그런데 스님은 그 옷을 한 번도 입지 않으셨다.

왜 그러시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도통 물어보지 못하다가, 궁금함을 도저히 참지 못해 조심스레 절에 계신 공양주 보살님께 여쭤봤다. 모른다고 했다. 결국 절의 신도 모임 회장님에게 물어봤다. 회장님이 다시 스님께 여쭤봤고, 돌아온 대답은 '불편해서 안 입는다'는 것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뭔가 스쳐 지나갔다. 화들짝 놀랐다. 옷 재단을 하면서 스스로 요령이라고 지칭했던 잔꾀가, 혹여 스님이 옷을 입지 않게 만든 원인은 아닐까.

법복 제작에는 원단 16마가 필요했다. 실제 재단에는 15마가 필요한데, 염색을 하면 1마 정도 원단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수로 15마만 염색했다.

결국 필요한 원단이 모자란 상황이 됐고, 잔꾀를 부려 승복 바지 폭을 5㎝쯤 줄여 재단을 했다. 승복 바지 폭이 원래 넓으니 좀 줄이더라도 스님께서 별 차이를 못 느끼실 거라고 생각하며 부린 잔꾀였다. 늘 같은 옷을 입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소한 차이가 엄청난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어느 날, 스님을 마주했다. 스님께서는 "섭섭하나? 니 옷 몇 년 지어 봤노? 30년도 안 해놓고"라고 하셨다. 이후 나는 그런 잔꾀를 부리지 않는다. 지인들에게는 우스갯소리로 "그때 그 부끄러움 때문에 천은 절대로 아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때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30년'이라는 시간은 내게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덧 30년이라는 시간을 옷 만드는 일로 보냈다.

하지만 옷 만드는 일에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내가 만든 옷이 잘 만든 옷인가 하는 자문을 하면 늘 자신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 '그저 열심히만 만들자'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1만 시간은 하루에 10시간씩 일하면 만 3년도 걸리지 않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나는 1만 시간의 10배인 30년은 옷 만드는 일로 보냈는데. 물론 꾀부리지 않고 적어도 성실하게는 일했다고 자부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스님 말씀대로라면, 30년이 지난 이즈음 옷이 보여야 하는데, 옷은 고사하고 나는 사람도 제대로 보지를 못한다.

며칠 전이었다. 한 남자 대학생에게 무용 대회 출전용 옷을 만들어줬다. 부잣집 귀공자 같은 인상이었다. 그런데 학생이 옷을 찾아갈 때 내게 한 말, "선생님, 사실은 이 옷 맞추려고 막노동을 했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이 옷이 아주 소중해요." 좀 더 정성껏 만들어 줄 걸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먹먹했던 가슴이 아직도 아프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