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총리 추천권 넘겨받은 야당, 이제 역량 보여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정세균 국회의장을 방문해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임명해 그에게 내각 통할권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은 '백기 투항'이다. 국회와 협의 없이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지명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야당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현 정세에서 박 대통령이 운신할 수 있는 여지는 완전히 소진됐다.

이런 옹색한 처지를 피할 방법은 분명히 있었다. 김 총리 내정자에 대한 '책임총리' 보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박 대통령은 상황 판단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스스로 알린 꼴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박 대통령이 총리 지명권을 국회에 넘김으로써 이제 공은 야당으로 넘어왔다. 원론적으로 새 총리는 여야가 협의해 지명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새누리당이 자중지란에 빠져 당론을 모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 야당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총리 후보자를 내야 한다.

그 조건은 여야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이 국정을 이끌어 가는 중립적 성향은 물론 국민 모두가 인정하는 인품과 지도력까지 겸비해야 한다. 그래야 새 총리가 전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인물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지만 찾아냈다 해도 당사자가 총리직을 수락할지도 미지수다. 만약 야당이 각자의 정치적 이해타산에 빠져 총리 내정자 선정에 시간을 끈다면 민심의 매서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야당의 태도는 이를 자초하겠다는 투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저와 야당이 제안했던 거국중립내각의 취지와 다르고 민심과도 동떨어져 있다"고 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앵무새처럼 '통할'이라며 같은 말만 하고 갔다"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국회에 공을 던지고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라고 폄하했다.

거국중립내각을 먼저 제안했으나 새누리당이 수용하자 '최순실 국정 농단 진실 규명'이 먼저라는 이유를 내세워 거부한 것과 똑같은 행태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에게 특검 수용, 총리 지명 철회, 국회 추천 총리 수용이란 조건을 내걸었다. 박 대통령은 특검은 이미 수용한다고 했고, 총리 추천을 국회에 넘김으로써 총리 지명도 사실상 철회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야당은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니 '최순실 정국'을 최대한 질질 끌어 내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속셈이라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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