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생인 김동진(75) 씨에게는 '갓바위 산신령'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2003년 말, 고향인 청도에서 부군수를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하고 나서 팔공산 갓바위만 750여 차례 오르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전에도 산을 좋아해서 앞산 같은 인근 산은 물론, 전국의 명산은 다 다녔어요. 정상에 오른 산만 70개는 훌쩍 넘을 겁니다."
휴일만 되면 전국의 이름난 산을 찾기 위해 배낭을 꾸렸던 김 씨는 퇴직 직후인 2004년 1월부터는 갓바위라는 '편식'을 하기 시작했다. 왜 갓바위만 찾을까? 그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다. "집과 가깝고, 갓바위를 올라가는 계단(현재 1천365계단으로 정비됐다. 김 씨에 따르면 1년 365일이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을 오르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질 수가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 가을철 팔공산은 절경이지요." 돌계단을 오르며 살아온 인생사를 한번 돌아볼 수 있고, 갓바위 부처를 만나 정성껏 소원을 비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
그는 이후 13년 동안 갓바위만 750여 차례 올랐다. 1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갓바위를 찾은 것이다. 지금도 매주 수요일은 갓바위 가는 날로 정해 꼬박꼬박 산을 오르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요일에는 반드시 갓바위를 찾습니다. 처음엔 목표가 없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은 1천 번을 채워야겠다는 욕심도 생겼어요. 1년이 52주니까, 5년만 더 오르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수인 것처럼 보였다. 지난 2011년 말엔 발뒤꿈치 골절로 수술을 받는 바람에 이듬해 1년을 통으로 쉬었다고 했다. 그래서 2013년에는 1년 동안 쉰 벌충을 하느라 한 해 동안 갓바위를 130번 찾는 의욕을 보였단다.
김 씨는 지난해 큰 모험을 했다. 고등학교 동기 7명과 함께 중국 차마고도(茶馬古道)에 배낭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차마고도는 중국 서남부 윈난성과 쓰촨성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인도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와 함께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로 꼽힌다. 길이가 약 5천㎞에 이르며 평균 해발고도가 4,000m 이상인 높고 험준한 길이어서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은 곳이다. 특히 가이드 한 명 없이 70대 노인 8명이 배낭 하나 짊어지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수년 전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꽃보다 할배'를 재연한 셈이다.
상하이에 도착한 '할배'들은 쿤밍까지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침대칸에서 이틀을 새우잠 자기도 했다. 또 인터넷으로 직접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혼숙했던 경험은 이들을 피 끓는 청춘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는 "배낭여행은 평생 처음이어서 걱정 반, 두려움 반이었다. 동기 중 한 명이 차마고도를 간 적이 있어서 그 친구 말만 믿고 전부 짐을 쌌다"면서 "8일간의 여정이 힘들긴 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돌아왔다. 다음번엔 어디에 도전해 색다른 경험을 할지 벌써 계획을 짜고 있다"고 껄껄 웃었다.
김 씨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신체건강은 물론 정신건강도 함께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그의 1주일 일정표를 보면 하루 일과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월요일은 고향에 내려가서 텃밭에 채소를 심고 온종일 농사를 한다. 화요일과 금요일은 수성도서관 사회문화대학에 가고, 수요일은 갓바위, 목요일은 논어 수업, 일요일은 '불문회' 모임에 참석한다. 그리고 토요일은 영화나 독서 등 취미생활을 하면서 보내는 식이다.
불문회 모임이 뭔지 궁금했다. 불문회는 수성도서관 사회문화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다. 24명의 어르신들이 자연에서 건강을 찾자는 의미로 매주 일요일 영남대학교 솔밭 숲길을 걷는 모임. 김 씨만 70대로 가장 나이가 적고, 전부 80대 어르신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김 씨는 "불문회의 이름은 '아닐 불(不)'과 '물을 문(問)'으로, 시간도 장소도 묻지 말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뜻"이라며,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이다 보니 등산은 힘들고, 평평하고 완만한 숲길을 걸으며 정신수양을 한다"고 말했다. "인생의 참 묘미는 건강해야 얻을 수 있다"는 김 씨는 "항상 밝은 생각을 하고, 자신 있게 행동하면 건강은 저절로 찾아온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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