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eat는 집] 밥 도둑 게 맛

'니들이 게 맛을 알아?' 몇 년 전 배우 신구가 유행시켰던 광고다. 레전드급 카피 덕에 롯데리아의 크랩버거는 핫 아이템이 되었다. 신구 씨보다 먼저 게 맛을 알아챈 시인이 있었다. 중국 시선(詩仙)으로 일컬어지는 이백(701~762)은 '월하독작사수시'(月下獨酌四首時)에서 '한 손에 게 발을 들고 한 손에 술잔을 드니 일생 살아가는 데 무엇을 더 바라리오' 하고 읊었다.

가을은 말도 살찌지만 게도 살찌는 '천고해비'(天高蟹肥)의 계절이기도 하다. 광고와 고문(古文)에서 회자되던 게 요리들이 지금 한창 식탁에 오르고 있다. 게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게의 풍부한 영양과 보신성이다. 해산물은 대부분 고단백,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이다. 특히 게에는 단백질 중 필수아미노산이 많아 성인들은 물론 성장기 아이들에게도 유익하다. 옛말에도 '어식백세'(魚食百歲)라 하여 민간에서도 해산물 섭취가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아쉽게도 대구와 게 요리는 크게 인연이 없어 보인다. 꽃게가 주로 서해안에서 잡히기 때문에 유통이 어렵고 내륙지방 특성상 활어 구경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에서는 생물 요리보다 게장요리가 발달했다. 취재차 방문했던 대부분의 맛집 주인들도 탕, 찜, 무침보다 게장 자랑을 늘어놓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200g 남짓한 갑각류, 꽃게. 괴이한 모양과 달리 요리 쓰임새는 무척 다양하다. 봄에 알이 듬뿍 든 놈은 게장이나 꽃게탕으로, 가을에 살이 꽉 찬 수컷들은 찜이나 무침으로 조리한다.

메뉴는 달라도 모든 요리의 하이라이트는 게딱지다. 꽉 눌러 담아도 세 숟갈도 채 안 되는 양이지만 그 효용도는 세 공기를 오히려 능가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밥도둑'이다. 취재 중 한 게장전문집에서 남성 둘이 공기밥 12그릇을 비우고 인증샷을 찍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처럼 어류의 성수기는 보통 한 시즌에 그친다. 그러나 꽃게만큼은 예외다. 봄엔 노란 알로, 가을엔 꽉 찬 살로 두 번 시즌을 연다. 살이 꽉 찬 가을 꽃게들이 이제 시즌을 마무리하고 있다. '게걸음' 치듯 도망가는 꽃게 시즌이 아쉽다면 이렇게 외치면 된다. 게! 섰거라. 밥도둑들!

◆이시아폴리스 근처 '숙이네꽃게한상'

#특제 소스로 양념해 해산물 비린내 잡아

한때 동구에서 연매출 7억원을 넘어섰다는 전설의 꽃게 명가다. 일반 식당과는 달리 무한리필을 선언하며 시내 게 요리 마니아들을 불러 모았다. 그 사이 꽃게 가격이 너무 올라 무한리필은 포기했지만 넉넉한 인심과 맛은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는 평. 주인 이순경(51) 씨가 말하는 대박집 비결은 신선한 재료. 매년 봄 가을이면 가장 살이 오르고 알이 꽉 들어찬 놈들만 골라 트럭 단위로 구매한다. 가장 신선할 때 급랭을 시켜 꺼내 쓰기 때문에 신선도 하나만큼은 자부한다. 10년 이상 공을 들였다는 특제 소스로 양념을 해 해산물 특유의 비린내, 잡내를 완벽하게 잡아냈다는 평을 듣는다. 신선도가 중요한 꽃게 무침도 양념, 숙성을 거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잘라서 무쳐내기 때문에 마치 꽃게 회를 먹는 느낌이다. 모둠 세트를 시키면 튀김 탕수도 같이 나와 가족외식으로도 그만이다.

▷대표 요리: 게장정식 1만2천900원, 꽃게한상세트 2만3천900원

▷주소: 대구 동구 팔공로 250 푸드몰 2층

▷전화번호: 053)984-5558

◆죽전동 '서산돌'

#연예인·스포츠 스타들의 단골 게장집

풍원장음식문화연구소장, 전통요리연구가, 제일요리학원장, 프랜차이즈전문가, 퓨전·사찰·전통음식전문가…. 대구 죽전동에 8년 전 '서산돌'을 연 장지녕 씨의 공식 직함은 10개가 넘는다. 이것도 대표 경력만 든 것이고 세부 이력까지 포함하면 명함 뒷면까지 채워도 모자란다. 22세때부터 외식업에 뛰어들었다는 장 씨의 별명은 '음식 복사기'. 아무 요리건 한 번 맛을 보면 그대로 베껴내는 재주가 있다. 장 씨의 꽃게요리는 일단 재료 구입과정부터 남다르다. 꽃게 시즌이 시작되면 직접 서해로 가서 어선들과 직접 접촉해 그날 잡은 게들을 전량 구입한다. 신선한 꽃게에 장 씨의 손맛이 더해져 서산돌만의 풍미가 완성된다. 이곳의 모든 양념, 소스는 천연재료만 쓴다. 다시마, 멸치, 표고버섯, 새우를 소금과 함께 갈면 서산돌만의 천연 조미료가 완성된다. 단골 연예인, 스포츠 스타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대표 요리: 게장백반 1만6천원, 꽃게찜 3만5천~4만5천원

▷주소: 대구 달서구 당산로45길 136

▷전화번호: 053)554-7737

◆수성구 들안길 '밥도둑'

#'얼큰한 꽃게탕' 맛집 블로거들이 극찬

'통영게장' '죽전동 서산돌'과 함께 초창기 대구 꽃게 맛집을 열어갔던 3인방 중의 하나다. 20년 전 대부분 꽃게요리는 탕이나 무침이 주종을 이루었다. 1997년 밥도둑이 들안길에 들어서며 요리로서의 꽃게가 대구에 소개된 셈이다. 입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심지어는 제주도에서도 체인점 요청이 들어왔다. 얼마 전 '밥도둑'으로 상호를 바꾸고 점포 경영에만 전념하고 있다. 밥도둑의 모든 꽃게는 연평도에서 직거래로 들어온다.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최상품들만 엄선한다. 대표 메뉴는 간장게장. 주인 박원철(48) 씨는 꽃게탕도 블로거들이 극찬하는 메뉴라고 자랑한다. 낙지, 홍합, 미더덕, 싱싱한 꽃게에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여내는 꽃게탕은 반주 한 잔 곁들여 식사를 하기에 딱 좋다. 해산물, 빈대떡, 샐러드가 나오는 밑반찬도 정갈하고 맛있다.

▷대표 요리: 꽃게탕 4만3천~5만3천원, 간장게장 2만원

▷주소: 대구시 수성구 들안로 104

▷전화번호: 053)763-7662

◆봉덕동 '옹기꽃게장'

#1만9000원에 게장 무제한 맛볼 수 있어

성수기 꽃게의 산지 가격은 마리당 1만원 선. 등딱지가 큰 대형은 3만원을 호가한다. 이런 가격 탓에 무한리필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악조건을 딛고 꽃게장 무한리필을 선언한 곳이 '옹기꽃게장'이다. 당연히 중국산이려니 생각을 했는데 놀랍게도 모두 국산이었다. 이 악재 속에서 무한리필 발상을 한 김종현(34) 씨, 그의 살아온 이력은 더 흥미롭다. 외식업계에서는 드물게 미 애리조나 주립대학 학사 출신이다. 그의 괴짜 기질로 인해 병역복무 방식도 남달랐다. 2004년 이라크 파병 때 지원해 운전병으로 전장을 누볐다. 제대 후 대기업에 응모를 했는데 '당신 이력서 참 독특하네' 하며 합격을 시켜주었다. 그러나 그의 '똘끼'는 대기업 안정된 자리마저 벗게 만들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인 꽃게장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이젠 양은 물론 맛으로도 승부를 볼 만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대표 요리: 게장 무한리필 1만9천원

▷주소: 대구 남구 대덕로 157

▷전화번호: 053)474-8130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