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미화 칼럼] 보수가 보수를 탄핵한 후

보수의원 절반 넘게 대통령 탄핵

국정농단 의혹에 안보功 다 묻혀

불똥 우려 급급, 보수당 앞날은

78%(234명)가 찬성표를 던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핵심은 '보수(국회의원)에 의한 보수(대통령)의 단죄'였다. 범야권 172표는 어떤 상황에서도 '반(反)박근혜'를 넘어서서 하야를 주장할 정도이니 당연 찬성표이지만, 집권여당인 보수정당은 다르다. 비선 실세에 농락당한 국격에 분노하는 민심을 받들면서도, 수많은 의혹 가운데 과연 무엇은 사실이고 무엇은 왜곡되었는지 방어하고 따졌어야 했다. 그러나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한 채 무너졌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대통령이 뇌물을 받거나 마약을 하거나 정적(政敵) 탄압과 같은 인권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한 의혹의 진실을 먼저 보고 싶어한다. 진실을 알아야만,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51.6%)로 당선되었고, TK에서는 80(투표율)-80(지지율)의 압도적인 성원을 보냈던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탄핵해도 후회가 생기지 않는다. 투표에 의해 선출된 현 정권의 정당성 방어 차원에서라도 최순실게이트에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부분과 관련 부처에서 벌을 받아야 할 일, 그리고 혹여라도 왜곡'과장'선동보도는 없었는지 철저하게 따져야 했건만 보수 국회의원 대다수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정 농단의 시초가 된 대통령 연설문 등이 담긴 태블릿PC가 최순실의 것이 맞냐는 논란이 대표적이다. 청문회에서 고영태'차은택'장시호는 한결같이 "최순실은 태블릿PC를 쓸 줄 모른다"고 증언했다. '최순실의 영향력은 대통령급(級)'이라는 치명적 폭로도 서슴지 않은 그들이 별 볼 일 없어진 최순실 비호를 목적으로 위증을 했다고는 아무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모든 권한을 정지당한 채 청와대 관저에 유폐된 현직 대통령을 한때나마 지지했던 수많은 보수 우파들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서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은 '태블릿PC가 진짜 최순실 것이냐' '검찰에 제출된 것은 1대냐, 2대냐' '태블릿PC와 USB 관계' 'JTBC의 보도와 다르게 증언한 한겨레 기자의 태블릿PC 입수 경로' 등에 대해 뭐가 진실인지 알고 싶어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수의원들은 성명서 하나 내지 않고 언론의 눈치나 보며, 침묵하다가 청문회에서는 자중지란 증상까지 보였다.

하태경 의원이 '태블릿PC가 최순실거'라고 보도한 JTBC 손석희 사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세우자고 하자, 같은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구)은 취재원 보호를 명목으로 반대했다.

통진당을 해산시킨 것도 최순실, 전통 생활문화인 오방낭을 최순실이가 밀어붙인 샤머니즘 주머니쯤으로 몰아붙이며 우리 문화 자체를 깎아내려도 보수당의 방어 논리는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사드도 최순실이가 밀어붙였다는 그릇된 주장을 펴도 보수당 의원들은 그저 모르쇠의 오불관언(吾不關焉)만 고수하며 여론 악화를 방관했다.

결국 촛불 시위 현장에서는 이석기를 석방시켜라는 구호가 난무했고, 북핵 방어에 필요한 사드 배치도 차기 대통령 선출 때까지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도는데도 속수무책이다. 안 그래도 이번 촛불 시위를 맘껏 즐긴 북한 김정은이 어디 대한민국의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 참아준다는 결재라도 받아둔 정치인이 있단 말인가.

TK의 속은 타들어갔다. 대통령을 봐주라는 것이 아니라 공과를 따지고 사실 여부는 파악해야 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보수가 보수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키는데 앞장서서 몰표를 던진 이후의 '포스트 탄핵' 정국은 더 걱정이다.

지난 주말, 이미 야권의 모 대권주자는 대선 자금을 모은다는 얘기와 함께 그와 절친인 유력 지인의 정보까지 떠돌고 있다. 벚꽃 대선, 아니면 폭염 대선, 또는 12월 대선 언제가 될지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여부를 기다려봐야 하지만, 제대로 된 지역 보수 주자 하나 없는 차기 대권은 이미 끝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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