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대선 치른 중앙亞 중심지
러시아·中·日 적극적 시장 진출 도모
한국 일찌감치 해외투자 선점하고
애써 일궈놓은 시장 남에게 내줄 판
우즈베키스탄의 12월 4일 대통령선거에 국제참관단의 일원으로 다녀왔다. 지난 9월 초, 신생독립국가 우즈베키스탄을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영도해 온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이 뇌출혈로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조기 대선이 치러졌던 것이다. OSCE(유럽안보협력기구), CIS(독립국가연합), SCO(상하이협력기구) 등 국제기구들이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한국, 일본 등 개별국가에게도 적잖은 대표단을 초청함으로써 600여 명의 참관단이 삼삼오오 웅성거렸다. 투표일에는 전국 어느 투표소에서도 여러 팀의 국제참관단이 목격되었다. 25년여 만에 2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우즈베키스탄은 그간 나라 안팎에서 '권위주의적 통치'라며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투표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선거일이 마치 축제 같은 분위기로 경쾌한 음악이 거리에 넘쳤고 어린이, 어른, 남녀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투표소가 북적거렸다. 과자와 장난감을 갖춘 아이들만의 공간이 따로 있고 보모들이 돌봐 주었으며, 어른들은 담소공간이 또 따로 있어 느긋이 앉아 세상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과거에도 투표소의 일상은 이랬을 것으로 미뤄 짐작했지만, 이번만은 이심전심으로 뭔가 해방감 같은 게 표출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대통령이 국부 같은 존재로서 위민정책을 많이 펴긴 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엄하게 집권함으로써 국민들 마음에는 어느새 적폐(積弊)의 존재로 각인되어 있지는 않았을까. 마치 우리 모두가 함께 느꼈던 1979년의 우리나라와 같이 말이다.
벌써 국내 정책 방향에는 뚜렷한 변화가 보이고 있었다. 긴 세월 동안 테러 위협 등을 명목으로 대통령궁 앞의 대로는 철벽으로 꽝꽝 막혀 교통 흐름이 미로화(迷路化) 됐었는데, 장애물들을 시원스레 들어낸 것은 정치 변화를 예고하는 상징처럼 보였다. 또 외국인들의 투자 및 경제 활동을 질식시켰던 외환통제 시스템을 빠른 시일 내 폐지할 것이라는 경제공약은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토지사유화와 관련해서도 일부 법인들의 명의로만 땅과 건물의 매매가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됐었는데, 최근 이것마저도 갑자기 금지하고 있음을 볼 때 조만간 토지사유화 조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들려왔다.
대외적으로도 변화의 조짐은 완연했다. 사실 고 카리모프 대통령은 서구와 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취해 왔었고, 특히 중국의 진입에 대해서는 까다롭게 장벽을 높였었다. 그러나 그의 사망 3일 만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전격 방문하여 대통령 권한대행이며 이번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미르지요에프 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왕창 힘을 실어주었으니, 친러시아 성향의 정책이 탄력받을 것은 불문가지라 하겠다. 또 중국과 일본까지도 이번 권력 변동의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적극적인 경제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만큼, 모름지기 그 옛날 실크로드의 영화가 우즈베키스탄을 중심으로 부활하는 형국이라 하겠다. 우리에겐 일찌감치 진출하며 어렵게 개척한 선점의 효과가 있지 않으냐 하겠지만, 근래 들며 추가투자가 이어지지 않아'물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는 우려의 목소리만 높았다. 곧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 뭉칫돈들이 유입되며 닥쳐올 치열한 경쟁체제를 걱정하는 것이리라.
예나 지금이나 중앙아시아의 중심은 우즈베키스탄이다. 비단과 모피가 지나갔던 시절이나 석유나 가스가 오고 가는 오늘이나 우즈베키스탄은 최대의 물산(物産)과 인구로 중앙아시아를 견인하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 인도, 아랍권, 중국 등 거대시장들이 동서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기업들의 우즈베키스탄 진출은 중앙아시아 시장에로의 확대로만 끝나진 않을 것이며, 더 큰 블루오션을 향한 디딤돌을 밟는 수순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재로선 우리가 최대 투자국임을 내비치며 새로 선출된 대통령의 첫 해외 방문지는 당연히 대한민국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쪽 지도층에 귀띔했더니, 나오는 반응이 무안스럽다. 서울이 어수선하고 불안하니 그리 쉽게 될까 하는 염려였다. 우리가 애써 일궈온 땅에 남들이 먼저 씨를 뿌릴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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