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은 '인플루엔자'를 역사상 가장 지독한 감염병으로 꼽는다. 1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이 대략 1천500만 명인 데 비해 1918~1920년에 유행한 '스페인 독감'(인플루엔자 A형 H1N1)으로 전 세계에서 약 5천만 명이 사망했다. 유럽 인구 4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1346~1352년 페스트 창궐이나 천연두도 가공할 감염병이지만 14세기와 20세기 인구 차이를 감안해도 인플루엔자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처음 나타났다. 미국에서만 55만 명, 인도는 1천250만 명이 희생됐다. 흔히 '무오년(戊午年) 독감'으로 불린 이 독감에 우리도 740만여 명이 감염돼 14만여 명이 죽었다. 인플루엔자 A형의 창궐로 전 세계 인구의 약 3~6%가 목숨을 잃었다. 포화에 휩싸인 유럽에 독감까지 겹치자 참전국들은 서둘러 전쟁을 끝냈다. 결국 대포가 바이러스에 투항한 셈이다.
스페인 독감 사망자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조류 독감 바이러스 유전자가 섞인 변종 바이러스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감기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해 2~3일 만에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감염자 상당수가 손 쓸 새도 없이 사망한 것이다. 독감 예방 접종이 시작된 것도 스페인 독감이 남긴 교훈이다.
올겨울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비상이 걸린 가운데 A형 독감 바이러스까지 급속도로 번지자 병의원마다 독감 백신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다. 지난주 전국 초중고교 독감 의심 환자 수는 1천 명당 152.2명으로 2주 전보다 4배 가까이 늘어 역대 최고치다. 대구경북에서도 학생 1만6천여 명이 독감에 걸리면서 각급 학교가 조기 방학을 서두르고 있다.
감기와 독감은 전혀 별개의 질환이다. 원인부터 다르다. 대개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감기는 원인 바이러스가 워낙 많아 예방 백신을 만들 수도 없다. 하지만 홍역이나 콜레라, 인
플루엔자 등 '대중성 질병'(crowd disease)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 노인과 6~12개월 유아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메르스로 인한 최종 사망자 수는 38명이었다. 반면 매년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는 최대 2천 명이 넘는 수치다. 메르스 사망자의 50배가 넘는다. 독감을 그저 독한 감기로 생각하면 큰코다친다고 의사들이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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