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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크리스마스'에 '메리'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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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MBN 앵커
전 MBN 앵커

#1. 내 인생 최악의 눈물의 크리스마스가 기다리고 있다. 삼성중공업에 다니는 신랑과 결혼할 때만 해도 우리 거제에서는 나름 성공한 혼테크였다. 조선소에 다니는 신랑과 은행에 근무하는 나의 맞벌이 연소득으로 우린 제법 여유로운 삶을 누렸다. 신랑 연봉으로도 충분했기에 둘째 아이가 태어날 무렵엔 다니던 은행도 퇴직하고 두 아이의 육아에 전념했다.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과 보금자리를 선물하고 싶어, 작년엔 조금 무리해서 내 집도 장만했다. 그런데 이대로 영원할 것 같던 우리 가족계획이 불과 몇 개월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버티고 버텼던 신랑은 결국 퇴직을 결심했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닌다. 나는 미련 없이 그만뒀던 은행에 다시 찾아가 시간제 근무를 요청했고 연락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큰맘 먹고 장만한 내 집의 가치도 조선업 붕괴와 함께 속절없이 하락했다. 올해 전국 아파트 값은 1.41% 올랐다는데 거제만 아파트 매매값이 4.55% 하락했단다. 사업자 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신랑과 함께 찾은 은행에서는 상담받는 내내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세상 사람 모두가 행복할 것만 같은 이번 '크리스마스'엔 사업 설명회를 듣기 위해 두 아이를 부모님께 맡기고 서울에 올라간다. 내년엔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메리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을까.

#2. 벌써 두 달이 넘었다. 나의 황금 같은 주말을 이 나라에 바친 지가. 함께 모인 이들이 목표했던 1차 저지선은 넘겼지만 아직도 비정상인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마지막까지 외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아홉 번째 집회가 열리는 그날이 하필이면 행복해야 할 축제의 끝판왕인 '크리스마스이브'다. 여자 친구의 잔소리가 걱정됐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던 여자 친구도 최근 진행된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를 보고 마음을 바꾸는 중이다. 무능한 국회의원들이 질의하는 모습, 뻔뻔하게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과 참고인들의 답변 모습을 보며 나보다 더 분개하고 있다. 꺼지지 않는 촛불의 힘이 탄핵 표결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묻혔던 진실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우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에 보장된 주권을 되찾고 그들만의 정치가 아닌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둘만의 '크리스마스'는 반납하기로 했다. 나의 2016년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닌 '하야안 크리스마스'로 기록될 것이다. 2017년은 '해피'하게 '뉴이어'를 맞이하고 '메리'한 '크리스마스'를 만들기 위해서.

#3. 만삭의 몸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렸는데,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집주인을 설득하지 못해 결국 엄동설한에 이사 날을 받았다. 아이가 태어날 예정일 전에 이사를 해야 해 급하게 문의를 하니 '크리스마스'만 가능하단다. 기독교인도 아니라 별 의미 없는 휴일로 치부하면 되는데 괜히 서러움이 밀려온다. 동대문에서 의류사업을 하던 신랑이 최근에 사업을 정리하는 바람에 매달 감당해야 하는 월세를 피해야만 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월셋집에 사는 가구가 전세 가구보다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도 나오더니 우리에게도 닥친 현실이 됐다. 사업을 정리한 신랑은 새로 직장을 구하고 있다. 청년 자영업자의 83%가 5년 내 폐업하고, 구직자들은 아무리 구해도 얻지 못한다는 뜻의 '구지부득'(求之不得)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는 기사까지, 왜 암울한 뉴스들은 다 내 이야기일까. '크리스마스'가 '메리'할 그날은 언제쯤 오는 걸까.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 거제에서 올라오는 내 친구 민혜와 여자 친구 손잡고 광화문에 간다는 선웅이, 내일 만삭의 몸으로 이사를 간다는 지선이, 부디 내년엔 '메리'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길. 우리 모두의 권리를 꼭 되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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