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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령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경험 많은 의사 선생님 미덥죠, 하지만…"

대구경북 60대 이상 개원이 전체의 9.2% 차지, 경북엔 90명도 3명이나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에 의료진도 예외는 아니어서 연세 지긋한 어르신 의사를 종종 볼 수 있다.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종사하며 쌓은 연륜은 분명 상당한 직업적 가치를 지니며, 누군가에게 분명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고령 의사의 증가는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면허정년제나 보수교육 강화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지난해 대구 한 종합병원에서 의사, 간호사들이 어르신 환자의 발을 씻겨드리는 세족식을 열며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에 의료진도 예외는 아니어서 연세 지긋한 어르신 의사를 종종 볼 수 있다. 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종사하며 쌓은 연륜은 분명 상당한 직업적 가치를 지니며, 누군가에게 분명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고령 의사의 증가는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우려한다.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면허정년제나 보수교육 강화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지난해 대구 한 종합병원에서 의사, 간호사들이 어르신 환자의 발을 씻겨드리는 세족식을 열며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80대 개원의가 운영하는 대구의 한 의원의 진료실에 오래된 의료장비가 놓여 있다.
80대 개원의가 운영하는 대구의 한 의원의 진료실에 오래된 의료장비가 놓여 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환갑을 넘긴 고령 의사가 대구경북에서만 2천 명을 웃돌 전망이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에다 의사 면허에 정년이 없다는 점이 맞물린 결과다. 오랫동안 쌓은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료 지식을 습득한다면 고령이라도 의료서비스 질을 유지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 물론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까다로운 질환도 정확하게 진단 및 치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70대를 훌쩍 넘긴 초고령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 중 일부는 진료 행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의사들에 대한 보수교육을 강화하거나 면허정년제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역 개원의 9% 이상이 60대 이상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구지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구경북에 의료기관을 개설한 60대 이상 개원의는 대구 351명, 경북 197명 등 548명이다. 이는 전체 개원의 5천969명(대구 3천469명'경북 2천500명) 중 9.2%를 차지한다. 개원의 10명 중 1명은 환갑이 지난 셈이다. 일흔을 넘긴 개원의도 대구 135명, 경북 87명 등 222명이나 됐다. 최고령 개원의는 경북의 군 지역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92세 의사였다. 경북에는 구순을 넘긴 의사가 3명이나 됐다.

연령대별로는 대구의 경우 40대 개원의가 1천256명으로 가장 많고, 50대(1천215명), 30대(530명), 60대(351명) 등의 순이었다. 경북은 50대 개원의가 939명으로 가장 많았고 40대(916명), 30대(372명), 60대(197명) 순이었다. 대구경북 모두 50, 60대 개원의가 전체 의원의 절반 가까이(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50대 의사가 많은 것은 1980년대 초반 전국 의과대학 정원이 두 배로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고령 의사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나이만큼 쌓인 임상 경험 장점

고령 의사들의 가장 큰 강점은 풍부한 임상 경험이다. 오랜 기간 쌓인 노하우와 폭넓은 시각으로 숨은 질환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신 지식을 꾸준히 습득하고 자기 관리에 충실하다면 팔순을 넘겨도 진료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대구의 한 80대 의사는 "지금까지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고 매일 같은 시각에 식사를 하는 등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이며 자기 관리를 해왔다"면서 "내과 진료는 오히려 임상 경험이 쌓이기 때문에 나은 점이 많다"고 했다.

수십 년간 같은 자리에서 동네의원을 운영한 덕분에 환자들과 유대감이 강하고, 단골환자들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경북 지역의 한 60대 개원의는 "30여 년간 한곳에서 병원을 하다 보니 단골환자들의 평소 건강 상태나 약물 알레르기 여부, 평소 앓고 있는 대사성 질환들을 한눈에 꿰고 있다"면서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인 변화나 우울증, 치매 발병 여부 등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주치의 역할을 한다"고 했다.

원로로서 지역 의료계에서 차지하는 무게감도 적지 않다. 지역 의료계 현안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과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구시 의사회 관계자는 "대학병원 교수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개원의는 학문적 깊이도 뒤떨어지지 않고, 환자의 질환과 치료방법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해주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소일거리 전락하는 병원도

7일 대구의 한 정형외과의원. 접수데스크에 홀로 앉은 간호사 뒤에 수기로 적힌 진료기록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환자 대기실에는 빛바랜 예방접종 광고판이 걸려 있고 귀퉁이가 닳아버린 소파는 비뚤어져 있었다. "무릎이 아파 X-선 촬영을 하고 싶다"는 설명에 "그런 진료는 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잠시 망설이던 간호사가 안내한 진료실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80대 의사가 책을 읽고 있었다. 무릎을 5초가량 만져보던 의사는 "무릎에 물이 차거나 이상이 없으니 그만 가보라"고 했다. 간호사는 멋쩍게 웃으며 진료비를 받지 않았다. 일부 의원은 동네 경로당에 가까웠다. 낡은 소파 주변은 생활집기와 책, 화분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환자들은 불안하다. 고령 개원의 중 상당수는 제대로 된 진단장비가 없고, 컴퓨터로 진료기록을 작성하지도 않는다. 의약품 중복 처방이나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점검하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도입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권모(51) 씨는 "눈이 침침해 가까운 안과를 갔더니 70대 의사가 잠깐 눈을 들여다보곤 안구건조증이라고 했다"면서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다른 안과를 찾았는데 노안 진단을 받고 안경을 맞췄다"고 했다. 직장인 김모(27) 씨는 "속이 쓰려 개원한 지 50년 된 동네의원을 찾아갔는데 접수데스크에 간호사도 없어 그냥 나왔다"고 했다.

◆의사 면허 자격 강화 목소리 높아

고령 의사가 해마다 급증하면서 의료계 내부의 우려도 적지 않다. 한 50대 개원의는 "의료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공부를 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고, 나이가 들수록 신기술을 받아들이기도 힘들다"며 "지금 70, 80대 의사는 30년 전 의료 수준으로 진료를 하고 있어 오진이나 과잉 진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력 25년의 한 간호사는 "의사 면허에 정년이 없기에 나이 많은 의사가 개인병원을 접고 요양병원 등의 촉탁의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경우 본인의 전문 과목과 상관없는 진료를 보게 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보수교육을 내실화해 자격을 검증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의 경우 면허 적격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면허 신고제'가 전부다. 의사들은 3년에 한 번씩 의사면허를 신고하고, 보수교육도 1년에 8시간만 이수하면 된다.

반면 선진국들은 고령 의사들의 의료서비스 질 저하를 막기 위해 의사 면허 유지 자격을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각 주별로 의사 면허 취득 후 정기적으로 '적격 여부'를 확인하도록 면허갱신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면허를 갱신하려는 의사는 ▷의료윤리에 입각한 의료행위 여부 ▷건강상태'질병 유무 ▷보수교육 수료 여부 등에 관한 서류를 제출하고 적격 여부를 심사받는다. 캐나다 퀘벡주에서는 병원과 협력활동이 없는 의사, 의사사회에서 격리된 의사, 5년간 3회 이상 소원수리가 접수된 의사 등을 대상으로 의료 능력을 점검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해부터 의료인 면허신고 항목에 건강 관련 내용을 추가했고, 보수교육은 출결관리를 강화하고 내용을 평가하는 등 내실화했다"며 "보수교육을 현행보다 강화하려면 의료계 내부의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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