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농업기술원에 근무하셨던 그분은 우리에게 풀 박사, 꽃 박사, 나무 박사로 통했다. 그분과 함께 다니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았다. "박사님, 저 꽃은 이름이 뭔가요?" "저 풀은요?" 그럴 때마다 그분은 그 식물의 이름부터 유래와 용도까지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그분에게 모든 식물은 자기만의 이름이 있었고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였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약 25만여 종의 식물 중에 인간의 쓰임새 이외의 풀을 우리는 잡초라 부른다. 잡초로 분류되는 풀은 약 2천~3천 종에 달하는데 그것은 농작물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 농경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었다. 곡식의 수량을 감소시키고, 품질을 떨어뜨리면 잡초가 되었다. 인간이 정해준 자리를 벗어나거나 우리가 사는 생활공간을 침범해도 잡초로 치부되었다.
우리가 혜안을 가지고 살펴보면 풀들은 저마다 색다른 가치를 드러낸다. 최근의 연구 성과를 보면 '잡초로 잡초를 제거'(以雜治雜'이잡치잡)하는 기술을 비롯하여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약재, 건강식품, 환경 정화, 천연염색, 경관 등의 기능성을 가진 잡초들이 발견되고 있다. 잡초는 잡초로만 매도될 일이 아닌 것이다.
풀만 잡초로 비하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란 말처럼 우리는 서울공화국에 살고 있다. 수많은 지방대를 '지잡대'라 칭하면서 지역 대학생을 잡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서울 이외의 지역은 '시골' 또는 '지방'으로 퉁쳐 버리기도 한다. 과연 지역 없는 서울, 지역민 없는 서울시민은 온전할 수 있을까?
아이돌이 되고자 각종 오디션에 매달리는 청소년들, 공무원과 공공기관, 대기업과 금융권 공채에 목숨 거는 수많은 '취준생'들이 있다. 그들은 거듭하는 실패에도 한 번의 성공을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그것은 불나방의 비행(飛行), 성골(聖骨)의 함정일 뿐이다. 순종만으로 구성된 사회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잡(雜)이라는 글자를 살펴보자. '잡'은 섞임과 모임을 본질로 한다. 다른 것이 섞이고, 둘 이상이 모인 '잡'은 전혀 다른 의미와 힘을 갖는다. 4차 산업혁명의 기본인 융'복합과 연결성은 잡의 본질인 창조적 뒤섞임과 같다. 뒤섞이면 강해지고 가치는 더 커진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뒤섞여 힘을 발휘할 때 그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개개인이 그들의 이름을 가질 때 그들의 재능은 깨어나 발휘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개성들 덕분에 더욱 건강해지고 잡종강세(雜種强勢)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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