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반기문 대선 불출마 선언이 정치판에 던지는 의미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혔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중도 포기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은 '정치 교체'라는 거창한 화두를 던졌지만, 그 내용과 실천 방법에 대한 각론은 없었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한 형용모순의 자기규정도 마찬가지였다. 진보와 보수, 중도 모두를 아우르는 후보임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진보적 보수주의'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는 불투명했다.

결국 반 전 총장의 실패는 콘텐츠의 부재 때문이었다. '국민 화합'이나 '국가 통합' 등 목표는 거창했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복안이 없었다. 이 때문에 반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이란 후광에만 기대 너무 쉽게 가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콘텐츠 부재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반 전 총장이 확실한 콘텐츠와 방향성이 있었다면 그가 내건 개헌을 고리로 한 '반 문재인 빅텐트론'도 실현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빅텐트론'은 어떤 개헌을 할지에 대한 밑그림조차 없었다. 개헌 방향을 놓고 각인각색인 현실을 감안하면 '빅텐트론'은 결과론적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말의 성찬이었다. 더구나 개헌을 대선 전략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개헌에 대한 올바른 접근도 아니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그의 불출마는 결국 그의 개인적 역량 부족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가 출마 포기의 이유로 제시한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와 '일부 정치인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태도'는 경청할 만하다. 물론 이런 것들은 대권 쟁취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문제이지 대선 포기의 결정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의 중도 하차는 국내 정치판의 이런 전근대적 풍토는 정치 신인이 뜻을 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재확인해줬다는 점에서 반면교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반 전 총장의 '정치 교체'는 우리 정치판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