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시설이 열악하고 낡고 오래된 주택이 밀집된 지역에 대한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대구 시내 곳곳에서 표류하고 있다. 건물'토지 보상 후 전면 철거, 공동주택을 건설하려 했지만 사업지구 지정을 위한 주민 동의율이 법적 기준에 못 미치는 데다 주민 간에 미묘한 갈등까지 발생하면서다. 개발 동력을 잃은 채 시간만 보내면서 자칫 우범지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불이라도 나면 큰일"
이달 1일 오전 대구 북구 복현동 주거환경 개선사업 예정지구. 허름한 단층 주택이 지붕과 지붕을 맞댄 채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은 행인 두 명이 교차하기에도 비좁았다. 김영백 복현1동 통장은 "마을 가운데서 불이 나면 소방차 접근이 불가능해 동네를 모두 태울지도 모른다"면서 "하루라도 빨리 정비가 필요하지만 사업 승인을 위한 주민 동의율이 오르지 않아 세월만 보내고 있다"고 푸념했다.
같은 날 오후에 찾은 북구 고성동의 주거환경 개선사업 예정지구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골목 양옆으로 늘어선 주택 중에는 빈집도 자주 눈에 띄었다. 파랑'분홍'녹색 등으로 벽을 칠해두었지만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과 무너져내린 담벼락까지 새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대문 앞을 쓸고 있던 한 할머니는 "동네에 빈집이 많아지면서 우범지대로 변해 개발이 필요하다"면서도 "50~66㎡(15~20평) 남짓 되는 작은 집을 가진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돈을 받지 않으면 사업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의 경우 북구 대현동과 노원동에서 아파트를 짓는 방식으로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진행 중이다. 또 2006년에 예정지구로 지정된 북구 고성동과 복현동, 중구 남산동과 대봉동에서 정비구역 지정을 위해 주민 동의 절차를 밟고 있다.
◆주민 동의율 정체…사업 지지부진
주거환경 개선사업은 재개발사업으로는 개발이 곤란한 지역에 공공시설'주택 개량을 실시해 현재 살고 있는 주민이 그 자리에 살 수 있도록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사업 시행자는 지방자치단체, 도시공사 등 공공기관이며 지구 내 국'공유지 일부를 무상으로 받거나 도로'상하수도 등 도시 기반시설 설치 비용이 지원될 수 있다.
정비구역 지정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 건물 및 토지 소유자 3분의 2 이상, 세입자 2분의 1 이상이 동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동의서 징수를 시작하지 않은 남산동을 제외한 고성동과 복현동, 대봉동에서 주민 동의율은 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고성동은 59.6%, 복현동은 58%에 멈춰 있다. 대봉동은 한때 동의율 54%를 기록했지만 동의 철회 요구가 잇따라 사실상 구청이 사업 추진을 포기한 상태다.
대구시 관계자는 "낙후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사업을 시작하지만 주민 동의율이 높아져 정비구역 지정에 가까워지면 보상금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며 "이때 민영 시행사가 도시공사보다 높은 보상금을 제시하며 사업에 뛰어들거나 주민과 도시공사 간 보상 협의가 해법을 찾지 못하면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하게 되고 동력은 사라진다"고 말했다.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 "차라리 그냥 사는 게 낫다"
정비예정지구 주민들은 도시공사가 책정하는 보상액으로는 다른 동네에서 집을 구하는 것은 물론 전세를 얻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상당수가 소규모 주택 소유주인 데다 70대를 훌쩍 넘긴 고령이라 월세를 내며 임대주택에 들어가는 것도 부담스러워했다. 고성동 주민 이모(72) 씨는 "도시공사 쪽은 보상금이 너무 적고, 민영 방식은 돈은 많이 준다지만 믿을 수가 없다. 수십 년 전부터 개발 얘기가 돌았지만 결국 사업 진행이 안 됐다"며 "오래된 집이라도 내 집 하나 있으면 남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는데, 얼마나 더 살겠다고 수십 년 지켜온 고향을 떠나 셋방살이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사업을 시행하는 대구도시공사 역시 난감한 상황이다.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공동주택을 개발하면 의무적으로 임대아파트를 20% 마련해야 해 수익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대구도시공사 관계자는 "사업성을 따지지 않고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주민 편에 서서 사업을 진행하려고 한다"면서도 "높은 보상액을 앞세운 민간업체가 들어와 여론이 흔들리면 주민 동의를 얻기 위한 해법 마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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