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수술비 홈페이지에 공개
치료 후기 사생활 침해라 비공개
환자 퇴원할 때 연락처 같이 줘
동료 의사 "어려운 수술 해결사"
백상흠(45) 차앤백치과의원 원장은 "어떻게 우리 병원을 알았느냐"며 궁금해했다. 양악수술, 사랑니 발치 등 구강외과 진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백 원장의 병원은 아는 사람만 안다. 치료 효과나 치료 후기를 늘어놓는 온라인광고도 전혀 하지 않는다. 치료 효과는 환자마다 다르고, 후기를 공개하면 환자의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게 이유다. "어려운 분들께 무료 양악수술도 해드리지만 밖에서 얘기하지 않아요. 그게 결국 광고니까…."
그와 만난 상담실 벽은 나무로 돼 있었고, 모양이 돔처럼 둥글었다. 치과 치료에 공포와 고통을 떠올리는 환자들을 위한 배려다. 그의 말 중 절반은 비유였다. 환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습관이라고 했다. 가령 "제 컨디션이 좋을 때 수술하이시더. 환자분이 미국 가시는데 날씨 좋고 비행기 훌륭해도 기장이 피곤하면 사고 나는 거 아입니꺼" 하는 식이다. 환자가 수술 결정을 망설일 때 그의 조언은 딱 두 종류다. "내가 환자라면 치료한다" 또는 "내가 환자라면 안 한다"이다.
◆공부에 빠져 개원 늦어…"기본 지키는 의사 될 것"
장래희망란에 어김없이 '의사'를 적었던 소년은 치과의사가 됐다. 백 원장은 "경북대 의과대에 떨어져 치의과대를 택했다"고 했다. 1991년도 경북대 의과대 정원이 140명에서 120명으로 줄면서 121등을 했던 그는 낙방했다.
백 원장은 "본과 3학년 때 실습에서 환자를 진료하며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그리고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의에 지원했다. "구강외과는 다들 꺼리는 진료과였어요. 수술이 어려운데다 응급 수술도 많고 힘들고 돈도 못 번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재밌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프라모델을 수없이 조립했던 손재주는 수술에 안성맞춤이었다. 10시간이 넘는 수술도 끄떡없이 버티는 체력도 한몫했다. 전공의 2년 차에는 프로판 가스 폭발로 안면을 심하게 다친 환자를 12시간 동안 수술한 적도 있다. 치과의사들이 까다롭게 여기는 사랑니 발치에 자신 있는 것도 전공의 시절 경험 덕분이다. "그때 하도 끼니를 건너뛰어서 허기를 참는 데엔 이골이 났어요. 집에서도 밥 타령을 안 하니 아내가 좋아하죠."
전공의와 군의관을 마치고 대구파티마병원 치과과장으로 들어갔지만, 2년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구강암 수술에 대해 좀 더 깊이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뉴욕주립대 버팔로 치과대에서 1년 6개월간 연수가 끝나고 나서야 개원을 했다. 미국에서는 의료 지식만큼이나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에 대해 절감했다. "미국에서는 환자와 의사 간에 신뢰가 대단해요. 의사는 환자를 100% 책임지고, 환자는 의사를 전적으로 따르더군요. 정말 부러웠죠."
미국에서 배운 대로 그는 "진료할 때 환자에 대한 기본과 원칙을 지킨다"고 했다. 연간 평균 150명 정도인 양악수술 환자를 위해 수술실과 입원실을 갖췄고,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도 함께 일하고 있다. 환자 상담은 원장이 직접하고 수술은 하루에 단 한 건만 한다. 병원 홈페이지에는 진료비와 수술비를 모두 공개한다.
◆60세 넘으면 봉사 전념하고 싶어
양악수술 환자가 많은 방학 기간이면 백 원장의 퇴근 시간은 오후 8시가 넘는다. 수술은 하루에 한 건이지만 환자에게 응급상황이 생길 것을 대비해 병원에서 대기하는 탓이다. 가끔 자정에 환자를 보러 가면 환자가 "제발 퇴근 좀 하시라"며 등을 떠밀기도 한다. 수술 환자가 퇴원할 땐 반드시 개인 연락처를 주고, 연락이 오면 새벽이라도 병원 문을 연다.
백 원장은 치과의사들 사이에서 '해결사'로 불린다. 동료 치과의사들이 난감해하는 치료를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재시술이 필요한 임플란트나 사랑니 발치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가끔은 내가 뒤치다꺼리를 하려고 구강외과를 전공했나 싶기도 하다"며 웃었다. 병원 밖에서도 해결사 역할을 한다. "대구시 치과의사회 법제이사를 지내면서 의료분쟁 조정한답시고 고생했는데 임기가 끝나니까 보험이사를 맡기더라고요. 요샌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치과의사회 사이에서 고생 중입니다. 허허."
그는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이기도 하다. 경북대 치의과대와 개원의 보수교육에 출강하고 있다. 갖가지 수술 경험을 맛깔나게 버무린 그의 강의에 속아(?) 구강외과에 지원한 치의대생도 여럿이다. "사실 남 얘기를 들을 땐 드라마처럼 재미있지만 막상 내 일이 되면 괴롭고 부담스럽거든요. 그래서 구강외과를 전공해도 저처럼 개원해서 수술하고 사랑니 뽑는 의사는 많지 않아요."
백 원장은 "나는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눈과 손이 재산인 외과의사는 45~50세에 전성기를 찍고 내리막길을 탄다는 게 이유다. 그는 치과의사로서 스스로의 정년을 60세로 정했다. 그때부터는 진료보다 사회공헌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 계획이다. "지금은 부끄럽게도 개인적으로 기부하거나 주말에 무료 진료를 하는 게 전부예요. 나이가 들면 제 인생의 9할을 봉사에 쏟고 싶습니다."
사진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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