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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대구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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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서양능금 재배가 시작된 것은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들 덕분이었다. 1898 ~1999년 구 제일교회 선교부지 자택 정원에 정원수로 심어진 것이 시초였다. 1900년 봄에는 동산병원의 존슨 의사가 미주리주에서, 애덤스 목사는 캔자스주에서 능금 등 과실 묘목을 대량으로 들여왔다. 현재의 동산병원 언덕 위에 시범포장 성격의 상업적 능금원이 개원된 것이다.

대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국 최고의 능금 주산지로 성장했다. 대구능금은 금호강변의 반야월에서 경산과 청도까지, 낙동강변에서는 칠곡에서 성주'고령까지 재배권이 확대됐다. 대구는 1970년대까지 능금 주산지 명성을 누렸고 외국시장에서는 한국산 수출품 중에서 최고의 명품으로 각광받았다.

명품 대구능금이 지역에 새긴 DNA도 만만치 않다. 길옥윤 씨가 작사'작곡하고, 패티김이 부른 '능금 꽃 피는 고향'은 대구찬가가 되었다. 2013년에는 '능금 꽃 피는 고향' 노래비가 지저동 금호강 둔치에 건립됐다. 경북도민의 노래에도 능금 꽃은 도민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능금은 대구경북인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과일이다.

시간은 흘러 대구능금이 경북능금, 경북사과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전국 생산량의 70%를 경북에서 생산하고 있다. 지금 대구에는 초기 대구능금의 한 축이었던 평광동 사과가 명맥을 잇고 있다. 140여 가구의 주민들이 100년 넘게 평광동 사과원을 지키고 있다. 팔공산 자락인 평광동에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 나무가 있고, 가을에는 사과 따기 체험 행사로 성황을 이룬다.

1970년대 쇠퇴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뉴욕시의 시도가 'I♡NY'이었다. 여기에 'Big Apple'이 가세하면서 뉴욕은 지구촌 사람들이 찾는 관광도시로 성장했고, 두 브랜드는 가장 성공한 도시 브랜드가 되었다. 1980년대에 대구는 섬유산업의 고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섬유산업에 문화를 가미한 Colorful Daegu란 도시 브랜드가 탄생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대구경제가 어려운 이때, 수출 명품이었던 대구능금이 시민들에게 또다시 희망을 줄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대구찬가에 나오는 능금 꽃 피는 사랑의 거리, 희망의 거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봄에는 하얀 능금 꽃이 피고, 가을에는 능금이 주렁주렁 열린 거리를 걷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대구시민뿐이겠는가. 대구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이 한번은 찾게 되는 명품 능금길이 되지 않을까? 대구능금과 Colorful Daegu가 조화된 'Colorful Daegu who loves apple'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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