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지음/돌베개 펴냄
수십만 개의 촛불이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이끌었다. 촛농이 떨어진 틈을 타 광화문 일대와 서울시청 앞, 헌법재판소 주변에는 태극기가 넘실거린다. '맞불집회'라는 이름으로 반대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정의로운 국가'와 '바른 지도자'는 겉으로 보기에 같은 단어지만, 다른 뜻이다.
'국가란 무엇인가'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저자 유시민은 2013년 정계 은퇴 이후 작가로 활동하며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2010년 초판에 담겼던 직업 정치인의 주장을 걷어내 한결 균형잡히고 명료한 국가론을 보여주고 있다. 유시민은 지난해 10월 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가 보도되면서 개정판을 내기로 했다. 박근혜정부가 노출한 문제에 분노하고 탄식한 시민이 더 훌륭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4대강 사업, 세월호 참사, 최순실 게이트 등 2011년 이후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국가' '정부'와 관련지어 다시 설명한다.
저자는 초판에서와 같이 용산참사를 상기하며 국가의 본질과 역할을 네 가지로 풀어나간다.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 확정 후 삶의 터전을 잃고 보상을 요구하는 상가 세입자들을 무력진압한 국가를 바라보며 첫째, 국가가 할 일을 제대로 했다고 하는 생각, 둘째, 국가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는 의견, 셋째, 국가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견해, 넷째,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 등이다. 네 가지 주장은 국가의 본질과 역할을 해명하는 국가론과 연결된다. 홉스의 국가주의 국가론, 로크'루소'하이에크가 주장한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고대 그리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쳤던 목적론적 국가론이다. 책은 동서고금의 다양한 철학과 이론을 제1~3장, 제7~8장 등에서 자세히 소개하며 국가의 본질과 기능을 살펴보고 정치와 시민의 역할을 찾는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현대 담론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을 물어도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다. 이 책이 질문에 시원한 답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올바른 국가가 어떤 모습인지 묻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을 듯하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초판이 나왔을 때부터 한 권으로 잘 정리된 국가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저명한 철학자와 이론가가 펼친 '국가'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해 국가론 담론을 소개하는 입문서 역할을 한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사상가들의 철학을 이 기회에 정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최근 출연한 TV 시사예능 프로그램에서 그가 수차례 이야기하기도 했고, 대선 정국을 앞두고 각 예비후보가 내세우는 '이념형 보수'와 '시장형 보수'의 가치 구분도 명확해진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진보정치에 대해 부연한다. 유시민에 따르면 진보는 생활환경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그에 따르는 제도의 조정 필요성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정신적 태도이고, 보수는 익숙한 것을 지키려고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다. 그는 익숙한 것을 수용하고 낯선 것을 배척하려는 본능을 거스르기 때문에 진보주의가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보정치의 국가론으로 목적론적 국가론을 제안한다. 국가의 텔로스(목적'telos)는 '정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론을 인용하면서 자유주의 국가론 위에 목적론을 세우자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칸트의 도덕성이나 베른슈타인의 개량주의보다 베버의 책임윤리가 정치인에 요구되는 도덕법임을 강조한다. 신념윤리를 지키면서도 결과에 책임지는 정치에 한 표를 던졌지만, 우리나라 정치지형에서 '연합정치'도 피할 수 없는 과제라면서 말이다.
아무리 유시민이 직업정치인의 '때'를 벗겼다고 하지만, 당면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그가 말하는 '국가주의 국가론자'라면 그의 '진보적 시각'이 다소 거북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 모두는 국가 안에서 국가와 관계를 맺으며 산다. 누구도 국가를 떠나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면서 "훌륭한 국가가 없이는 시민의 삶도 훌륭해지기 어렵다"고 하는 저자의 설득마저 모른 체하긴 어려울 것 같다.
생명의 안전과 재산의 보장을 위해 힘을 나눠 가진 국가지만, 국가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 없이 실현하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 국가는 두려운 존재다. 법원과 경찰서는 멀리할수록 좋고, 교통범칙금 안내서만 받아도 자발적 복종이 이뤄지는 건 국가가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국가를 버리는 것도 쉽지 않다. 저자는 훌륭한 국민은 "이게 나라냐"라고 푸념하기보다 민주공화국 운영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타이른다.
유시민은 서문과 본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했다.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훌륭한 시민이 훌륭한 국가, 정의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인가.
33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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