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재원의 새論 새評]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분열된 광장의 언어 금도 넘어서

자신 뜻 관철하려 다름 인정 않아

헌법 가치는 법 통한 모두의 공존

민주적 집단지성의 힘 필요한 때

"민주주의가 암흑 속에서 죽다."(Demo cracy Dies in Darkness) 미국 온라인 쇼핑회사,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저스의 말이다. 2013년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를 인수한 직후 인터뷰에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민주주의가 암흑 속에서 죽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어떤 기관들은 (희망의) 빛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WP가 그런 막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가을 터진 최순실 국정 농단 게이트는 베저스의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비선 실세에게 내맡긴 대통령. 주요 국정 현안 개입으로 사익을 챙긴 비선 실세. 알량한 권력 욕심 탓에 눈을 질끈 감고 '부역자'로 전락한 공직자들. 한마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생생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희망의 빛'은 있었다. 깨어 있는 국민의 민주의식이었다.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1항) 주권자의 외침에 대통령은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뒤늦게 검찰은 비선 실세를 구속했다.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사실상 파면결정을 내렸다. 연인원 1천만 명을 넘어선 촛불집회는 민주주의 축제로 바뀌었다. 외신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통령에 의해 망가진 민주주의를 평화적으로, 법에 따라 복원해 내는 그 힘 말이다.

최근 WP가 자사 홈페이지 회사명 아래에 슬로건을 내걸었다. '민주주의가 암흑 속에서 죽다.' 새삼 암울한 메시지를 내건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경고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민주주의 원칙과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 이슬람 국가를 겨냥한 반(反)이민, 제1호 행정명령이 대표적 사례다.

어쩌면 우리도 다시금 민주주의 사망 우려에 대한 경계심을 되뇌어야 할 것 같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태평로. 북쪽 광화문 광장에선 '탄핵찬성' 촛불집회가, 남쪽 서울시청 앞 광장에선 '탄핵반대' 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양측 집회 사이에 300m 완충공간을 만들었다. 거기다 버스 차 벽을 세워 통행을 엄격히 제한했다. '비무장 지대'를 두고 주장은 극명히 엇갈렸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특검을 연장하라", 광화문 광장이 외쳤다. 뒤질세라 "탄핵은 무효다" "특검은 빨갱이다", 시청 광장이 되받았다.

물론 광장의 분열을 민주주의 다양성으로 치부할 수 있다. 집회와 시위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광장의 말들이 민주주의 금도(襟度)를 넘어서고 있다. "아스팔트에 피를 흘리는 정도를 넘는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탄핵되면 유혈저항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이다. 급기야 "(헌법재판소 재판관) 당신들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탄핵 기각 경우를 놓고도 '혁명' '저항권' 등의 말이 쏟아졌다.

탄핵 인용이든, 기각이든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니 뒤집어엎겠다?' 사회적 합의인 법적 질서를 자신의 편의대로 무시해도 좋다는 생각, 정말 위험하다. 다름과 차이를 '잘못'으로 인식해 무조건 자신 뜻만 관철하려는 태도, 바로 전체주의적 사고다. 우파가 좋아하는 철학자 칼 포퍼의 말을 빌리면 '닫힌 사회'이다.

반면 생각과 신념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러면서도 법의 지배를 통해 공존하는 것. 바로 '열린 사회'이다. 우리 헌법이, 모두가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발호를 막아야 한다. 탄핵심판 결과 '불복'을 외치는 세력을 민주주의 '집단지성'의 힘으로 응징하자. 그런데 탄핵이 기각되면? 당연히 '쿨'하게 받아들이자. 민주주의는 한 판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강물은 때론 돌아서 흐르기도, 역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히 바다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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