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재소설] 새들의 저녁(3)-엄창석

육칠십 명이나 되는 계승의 일행이 정거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정거장 좌측에 초가를 길게 이은 임시 건물이 있었다. 경부선 철도부설 공사 때 노무자들이 쓰던 숙소였다. 계승은 그곳으로 이동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함석지붕에다 목조로 벽을 세운 대구정거장. 초량에서 흔히 보았던 일본식 여관들. 길가의 작은 상점에는 어둠이 내리면서 아마도 석유등을 켜고 있을 사람들의 그림자가 창문을 빠져나와 길 위로 어룽거렸다.

이런 낯선 모습에 계승은 귀향한 실감을 전혀 갖지 못했지만, 비로소 역사 건너편에 높은 성벽이 장중하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 성벽을 따라가던 눈길이, 저 멀리, 원근의 차이로 크기가 점점 줄어드는 긴 성벽 한가운데를 움켜잡듯이 장악하고 있는 북문(北門)에 닿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구네."

계승은 마종수의 어깨를 치며 입을 뗐다. 마종수가 맞은편 돌벽을 쳐다보았다.

"니미, 어마어마하게 높네."

"5미터야. 높은 데는 6미터가 넘어."

계승은 가방을 든 팔을 올려 아름을 지으며 이것이 대구부를 둘러싸고 있지, 하려다 말았다. 높이에 대한 느낌도 다른 데다 어차피 헐릴 성이었다. 양편에서 일인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걸으면서 장난을 치거나 성을 보며 짜증난 투로 씨부렁거렸다. 마주쳐오는 등짐꾼들에게 한마디씩 입을 던지기도 했고, 앞서 걷다가 떼거리를 피해 갓길로 붙는 여자들의 엉덩이를 손으로 만지기도 했지만, 시비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미 일행의 앞머리가 숙소로 들어갔고 나머지도 거리에서 꼬리를 거둘 판인 것이다.

저녁은 푸짐했다. 나무 식판에 얹힌 노루고기는 막 삶아서 꺼낸 듯 김이 뭉클뭉클 올라왔고, 겉이 황금색인 양은 주전자는 주둥이에 술이 뚝뚝 흘렀다. 초량에서든 어디에서든 이 정도는 드문 식사였다.

"곧 일을 시작해서 동 트기 전에 마칠 거네. 서울에서 내려오는 첫 기차가 11시에 있으니까 바로 타고 부산으로 돌아가면 돼."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왜어로 크게 말했다. 같은 기차를 타고 올라온 이토라는 사람이었다. 인부를 구하려고 부산에 왔던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상한 점은 이들이 일본 이사청의 관리거나 한국 관찰부에 한둘씩 있는 일본 관헌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구에 있는 일본의 민간 거류민들이었다.

계승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황제 폐하의 조정이 흔들리고 있다지만 관리도 아닌 한갓 거류민이 성을 헐 수 있을까. 성은 너절하거나 낡지도 않았다. 황제의 아버지인 대원군이 보수와 증축을 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성곽의 돌들은 윤곽이 뚜렷했고 남쪽으로 난 제 1문의 자태는 대구부의 모든 건물 가운데 가장 기품이 있었다. 설령 헐벗었다 해도 민간이 헐 수는 없을 터였다.

소리치고 있는 이토 옆에 턱수염을 정갈하게 다듬은 중년 남자가 눈길을 끌었다. 그도 부산에 같이 내려와 인부를 구했던 사람이었다. 이 이가 나카에 고료헤였다.( 이 무렵 소점포 주인인 나카에는 훗날 조선 전체에서 제일가는 미나카이 백화점을 경영하게 된다.) 그는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세심해 보이는 눈빛과 다소곳한 인상이 은근히 매력적이었다. 이토가 팔을 벌려서 무너뜨릴 성의 지점을 설명하던 중에, 우리 가운데서 하나가 술사발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다리를 저는 우치타였다.

"아 우리는 바다를 메우다 왔죠. 성을 허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핫, 돌을 뜯어 밑으로 굴리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지 않느냐는 듯 주위를 보며 동조를 구했다. 여기저기서 맞장구를 쳤다.

"자네 말이 맞네. 자, 잔을 비우고 성으로 가자"

이토가 손을 깃발처럼 흔들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북소리가 둥둥 울렸다. 사대문을 닫는 인정(人定) 소리였다. 대구의 인정은 밤 여덟시에 울린다. 그 소리는 대한제국이 여전히 대구를 관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렇다면 민간인이 야간에 성을 헐 수가 없는 것이다. 둥둥, 북소리는 이 작업이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았음을 알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게 아니면 감영 군대(진위대)가 힘을 잃어서, 성안 사람들이 직접 북을 두드려 부민들을 불러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뭔가 잘못 된 것 같은데."

계승은 옆 사람에게 말했다. 다른 한인들도 얼굴이 붉어졌다. 한인이라면 저 북소리가 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성을 허물려던 사람이 죽었다잖아. 이러다 싸움부터 하는 거 아냐?"

"니미, 싸움나면 우린 어느 편이야, 이쪽이야 저쪽이야?"

몇몇이 "한인이냐 초량이냐" 하며 낄낄 웃어젖혔다. 한인들은 불안스러웠지만 일인들도 미심쩍어하는 표정이었다. 이토와 나카에는 단호했다. 십장들을 불러서 이후의 일을 지시했다. 우리는 숙소에 딸린 창고로 가서 장비를 꺼냈다. 삽날이 달린 가래와 삼발수레, 곡괭이, 사다리, 광주리, 가마니를 육칠십 명이 들거나 맞잡고 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어둠에 쌓여 있었다. 노루고기와 몇 사발씩 들이킨 막걸리가 쌀쌀한 기온을 몰아냈다. 사방이 조용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고 용구조차 바닥에 끌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성벽을 따라 걸음을 총총 옮겼다. 우리에게 맡겨진 작업은 성의 북쪽 면을 허는 것이다. 곧 북문에 도착했다. 문 앞에는 더 짙은 어둠이 깔렸다. 누각의 지붕 끝에 이지러진 달이 걸려 있었다. 문 위로 솟은 거대한 누각은 문 앞으로 모여드는 인부들을 압도했다.

대문이 열려 있었다!

좀 전 폐문하는 북소리가 울렸지만 북문은 닫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없었고 관헌도 눈에 띄지 않았다. 휑하니 뚫린 문으로 성안의 공기가 엷게 밀려나와, 마치 우리가 성안으로 들어가면 섬멸해버리겠다는 양 어떤 음모를 감춘 것처럼 보였다.

북문으로 다가오는 한 떼의 사내들이 보게 된 것은, 우리가 성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밟고 성벽 위로 올라섰을 때였다. 그들은 다음 기차를 타고 온, 우리와 같은 초량에서 온 노무자들이었다. 한 기차를 타지 못했거나 기차 칸이 모자라 인원을 나누었는지 모른다. 숫자는 스무 명 남짓했다. 작은 수였지만 마치 원군이 도착한 것처럼 일꾼들은 곡괭이나 가마떼기를 흔들며 환호를 질렀다. 저들이 합류하자 이제는 성안의 사람들과 대결이라도 할 수 있는 양 기백이 넘치는 동작으로 성을 허물기 시작했다.

성곽의 두께는 8미터쯤 되었다. 성 위에서 마차를 내달릴 수 있는 넓은 폭이었다. 수비병들이 몸을 가리는 여첩이 성곽 바깥으로 세워져 있고, 여러 가지 형태의 총구를 넣는 작은 구멍(총안)과, 벽을 타고 오르는 적군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게끔 성벽 밖으로 돌출해놓은 치(雉)가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당시 기술력을 제대로 모아놓은 성이었다. 인부들은 여첩과 치에 정을 때려 틈을 만들었고 거기다가 긴 지렛대를 꽂았다. 두엇이 지렛대에 매달리자 돌이 꿈틀거렸다. 돌과 돌을 물고 있는 회가 떨어지고 한 아름 되는 큰 돌이 비명을 질렀다. 이윽고 돌은 벼랑 아래,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우치타의 말처럼 흙을 파서 바다를 메우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계승은 허리를 펴고 달빛에 비치는 일꾼들을 보았다. 정을 박거나 곡괭이질을 하는 사람들도 한숨을 돌리는 중이었다. 휴식은 일제히 시작하고 일제히 끝내는 게 일꾼의 습성이다. 여기저기서 먼저 성냥불을 그은 이에게 사람들이 모여서 불을 얻은 뒤, 여첩에 기대 앉아 담배를 피웠다. 길게 뻗은 긴 성 위에서 반딧불 같은 작은 불빛이 끝없이 반짝였다. 어릴 때가 생각났다. 몇 살이었던가. 여섯 살 때던가. 어린 우리들이 이 성 위에 올라와 연을 날린 적이 있었다. 성 위에는 정말 아무도 오를 수 없었는데 그해에는 특별했던 것 같았다. 어린 우리와 어른들까지 성 위에서 연을 띄웠고, 밤에는 쥐불놀이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해 정월대보름이었던 것 같았다. 그날도 지금처럼 성 위에서 수많은 불빛들이 반짝반짝하였다. 오히려 성은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별 같은 것이 땅으로 내려와 대구부를 빙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북두칠성 같은 커다란 별자리가 내려온 듯한 그 광경을 잊을 수 없다면서, 언젠가 계승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국수를 밀고 있던 어머니가 계승을 빤히 보며 웃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지."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서교인(西敎人)들을 붙잡아 처형하던 때라고 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좀 길었다.

"대구에도 서교인이 셋이 있었어. 마침 성안에 머무는 걸 어떻게 알고는 포졸들이 큰문과 암문(暗門)을 모두 닫았지. 셋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독 안에 든 쥐야. 서씨 성을 가진 한 사람이 숨을 곳을 찾아 성벽을 따라가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커다란 성돌 하나가 쑥 빠지는 거야. 벽에서 말이다. 서씨가 냉큼 돌 빠진 곳으로 뛰어들었어. 그때 빠진 돌이 슬쩍 닫혔지 뭐니. 신기하지 않아? 천주님이 도우셨네, 하고 서씨가 놀라는데 그 좁은 곳에 두 명의 신자가 미리 들어와 있더라는 거야. 그들도 이 밑을 지날 때 성돌이 입을 열어준 거지."

계승도 들은 듯했는데 잘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국수를 밀면서 "다들 아는 건데 넌 모르니?"하며 계속 얘기를 이었다.

"셋은 작은 암굴에서 사흘을 굶었지만 목숨은 잃지 않았지. 그들은 놀라운 사실을 남기고자 했대. 그래서 신비로운 성돌에다 조그마하게 물고기 그림을 그렸단다. 옛날 라마(羅馬, 로마)에서 신도들이 암호로 물고기를 그려서 서로 교인인 것을 알아보았다거든. 성벽에서 나온 서씨가, 훗날에 다시 와서 아무리 찾아도 자기를 살려준 성돌이 보이지 않더라는 거야. 더 신비한 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어. 서문 앞에 십자(十字) 성모성당을 지을 때 말이야, 한 일꾼이 물고기 그림이 그려진 주춧돌 하나를 발견한 거야. 서씨는 이미 고인이 되어 서씨의 조카를 불러 돌을 보여주었대. 너 서씨 조카 알지? 지금 성안에 사는 서 시찰(視察) 어른이 바로 서씨 조카야. 그러니 아주 오래전 얘기지."

계승이 대구를 떠나기 전에 들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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