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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문학노트] 곽재구의 '포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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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아래 해수욕장이 있었다/곽재구의 '포구기행'

바람 아래 해수욕장. 이곳에서는 바람의 눈썹이 보였다. 시간의 눈썹과 모래의 눈썹 또한 보였다. 한없이 아늑하고 고요했으므로 그들이 지닌 눈썹 몇 개가 하늘로 올라가 낮달의 영혼과 만나는 모습도 보였다. 갈대들이 바닷물 속에 하반신을 담그고 있었다. 물과 갈대가 만나는 지점에 물비늘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의 미세한 모래 언덕은 지상에서 가장 평온한 시간들의 가루의 퇴적인지도 모른다. 아시는가 그대, 구름이 많은 날의 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바람 아래 세상의 뭇 삶들의 꿈은 기실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바람 아래, 바람 아래, 강둑 그곳에는 아주 평온한 거울 속의 봄바다가 산다.(곽재구 '포구기행' 부분)

이제는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제법 시간이 지난 2010년 겨울이 지나가는 어느 날, 바람 아래 해수욕장을 만나러 안면도로 떠났다. 먼 길이었다. 바람 아래에 해수욕장이 있을까? 바람 아래에 머무는 해수욕장은 어떤 풍경일까? 그 해수욕장은 바람 아래 존재하기에 바람이 불지 않을까? 시인이 만난 바람의 눈썹, 시간의 눈썹, 노래의 눈썹을 볼 수 있을까? 지상에서 가장 평온한 시간들의 퇴적을 만날 수 있을까? 정말로 안면도에는 바람 아래 해수욕장이 있었다. 백사장, 삼봉, 기지포, 안면, 두여, 밧개, 두에기, 방포, 꽃지, 샛벌, 운여, 장삼포, 장곡 등 예쁘고 다양한 이름을 지닌 해변을 지나 안면도의 가장 끄트머리에 바람 아래가 숨어 있었다. 안면도의 변방이랄까? 나무로 된 작은 표지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내비게이션이라는 편리한 도구가 없었다면 실컷 헤매다가 결국은 돌아설 수도 있었던 숨은 땅이었다. 갑자기 확 트이는 바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바다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물러나 있었다. 시야에서 멀어진 바다가 바람의 눈썹을 만지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에는 자동차의 발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길이 길로 이어진 기다란 길을 보며 내 삶의 모습도 저기 어디쯤에서 걸어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곽재구는 나에게 바람 아래 해수욕장과 같은 대상이다. 젊은 시절, 문학 작품의 현장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즐겼다. 순천만에서 처음 시작한 여행은 10여 년 동안 이어졌고, 몇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전국을 다 돌았다. 특히 예쁜 이름을 지닌 작은 포구들이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내 속에 하나씩 새겨졌다. 여행기를 정리하고 책을 내야겠다고 몇 번이나 원고 수정을 거쳤다. 그런데 곽재구의 '포구기행'이 나왔다. 시인이 만든 아름다운 정서와 감성적인 문장들. 내 여행기는 그냥 낙서에 불과했다. 겹치는 풍경도 많았다. 절망했다. '포구기행'이 출간된 지 7년이 지난 2009년, 나도 '문학의 숲으로 떠나는 여행'이란 제목으로 여행기를 냈다. 차별화하려고 애를 썼지만 풍경을 바라보는 비슷한 정서로 인해 무척이나 힘들었던 기억. 하지만 그것도 이젠 추억이다. 바람 아래 해수욕장이 그리운 것처럼 곽재구도 여전히 그리움 그 자체이다.

바람 아래도 이젠 추억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은 사진 몇 장만이 기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잊고 싶어 사진을 모두 불태운다고 기억이란 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추억은 가슴 안에 똬리를 틀고 견딘다. 바람 아래는 여전히 내 속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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