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타고 돌며 혈관 폭 좁히거나 막아…뇌혈관·심혈관계 질환 유발
장시간 앉아있거나 좁은 비행기 탑승 때 다리 혈관 막혀 나타날 수도
#1. 이모(62) 씨는 심장 초음파 검사에서 부정맥이 발견됐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소 특별한 이상을 못 느낀다는 게 이유였다. 건강을 자신했던 이 씨는 출근길에 오른쪽 다리가 심한 통증과 함께 마비되는 느낌을 받았다. 발의 색깔도 창백했다. 급하게 응급실을 찾은 이 씨는 혈전으로 오른쪽 다리의 동맥이 막혔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씨는 "수술로 혈전을 제거하고 위급한 고비는 넘겼지만 평생 항응고제를 복용해야 한다"고 푸념했다.
#2. 휴일을 맞아 온라인게임에 몰두하던 홍모(35) 씨는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꼈다. 왼쪽 다리가 부었고 숨을 쉬기 어려웠던 것. 병원을 찾은 홍 씨는 다리 정맥 내에 생긴 혈전 때문에 폐동맥이 막히는 폐색전증을 겪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홍 씨는 혈전 용해 시술을 받고 부기는 빠졌지만 호흡이 가빠져 1주일간 산소치료를 받아야 했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은 동맥을 타고 나가 온몸을 돌고,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혈관이 좁아지거나 손상돼 혈류가 느려지면 정체된 피가 뭉치게 된다. 바로 '혈전'이다. 혈전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혈액을 타고 돌면서 혈관 폭을 좁히거나 막아 혈액의 흐름을 막는다. 혈전이 혈관을 막으면 뇌경색, 심근경색, 폐색전증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뇌혈관'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한다. 혈액 순환이 막힌 장기는 조직이 괴사해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심장 동맥 막히면 빠르게 증상 악화
상처로 피를 흘리면 혈액은 피딱지를 만들어 지혈을 한다. 그러나 혈액은 혈관 내에서 굳어서는 안 된다. 혈액 안에서 응고를 유발하는 성분과 억제하는 항응고 성분이 균형을 이루는 이유다. 혈관 안에서 굳은 혈액은 혈관을 막고, 혈액의 흐름이 막히면 장기가 괴사하게 된다. 또한 혈관을 따라 신체 각 부위로 전달되면서 폐색전증 등 합병증을 일으킨다.
혈전은 동맥과 정맥에 따라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다. 심장 수축으로 빠른 혈류가 유지되는 동맥에서는 혈관보다는 심장에서 혈전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 혈전을 생성하는 가장 주된 원인이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수축하면서 좌심방의 특정 부위에 혈류가 소용돌이치면 심방 내에 혈액이 머무르면서 혈액이 굳게 된다. 이렇게 생긴 심장 내 혈전은 대동맥을 따라 머리, 팔, 신장, 소장, 다리 등 신체 곳곳으로 떠내려간다. 동맥이 혈전으로 막히면 뇌졸중이나 손의 청색증 마비, 신장'소장 괴사, 급성 하지동맥 괴사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동맥 혈류가 갑자기 막히면 서서히 혈류가 막히는 경우보다 병증이 빠르게 악화된다. 이때 혈전을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 심각한 후유증을 막을 수 있다. 주로 혈전을 녹이는 혈전 용해제를 주사하거나 수술이나 시술을 통해 직접 혈전을 제거한다. 치료 후에는 혈전 생성의 원인이 된 심장 부정맥을 관리하는 동시에 혈전 재발 방지를 위해 혈액 응고를 억제하는 항응고제 약물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정맥혈전증 폐색전증으로 이어지기도
정맥은 동맥과 달리 혈류 속도가 느리다. 심장의 힘으로 움직이는 동맥과 달리 팔'다리의 근육이 움직여 정맥을 짜주는 힘으로 심장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심장에서 먼 다리는 혈류가 정체돼 혈액이 굳기 쉽다. 장시간 앉아있는 직장인이나 비행기처럼 비좁은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경우에는 다리의 혈관이 막히는 '심부정맥 혈전증'(DVT)이 나타날 수 있다. 심부정맥 혈전증이 생기면 무릎 아래가 부풀면서 아프고, 혈전이 생긴 부위가 붉게 변한다.
이 밖에 암 환자도 혈액 응고 기능에 이상이 생겨 혈전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혈액 속의 항응고 기능을 담당하는 성분이 적은 경우에도 정맥혈전증이 생기기 쉽고 재발률도 높다. 특히 정형외과 수술이나 복부 수술을 받으면 혈전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산모의 태반 혈관에 혈전이 생기면 유산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정맥 내 혈전이 폐혈관으로 넘어갈 경우 폐혈관이 막히는 폐색전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폐혈관이 막히면 폐로 유입되는 산소와 혈류 공급량이 줄어 숨이 차고 혈압이 떨어진다. 심하면 졸도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정맥혈전증은 수술보다는 혈전 용해제를 이용해 혈관 시술을 하거나 항응고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혈관 초음파는 혈전의 유무와 범위, 오래된 혈전 유무, 정맥 내 역류 등 합병증 발생 여부 등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또 응고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 검사를 하고, 가족력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혈전증이 의심스러우면 즉시 항응고제를 투여해 혈전을 녹여야 한다. 다만 항응고제를 쓰면 멍이 들거나 출혈이 일어나기 쉬우므로 신체 상태를 살펴 적정량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기혁 대구가톨릭대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혈전은 혈관 내를 계속 떠도는 것은 아니다. 혈전 발생 원인도 기름진 음식이나 담배 등 잘못된 생활 습관과 직접적인 연관성도 없다"면서 "혈전을 예방하려면 생활 습관 조절보다는 항응고제 등 약을 복용하는 것이 필수이고, 초기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박기혁 대구가톨릭대병원 혈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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