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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TBC공동기획, 신지호가 만난 사람]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

"21세기 국가 목표는 국민행복, 지방자치 맞춤 행정으로만 가능해"

심대평. 이무성 객원기자
심대평. 이무성 객원기자

또다시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이참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른바 분권형 개헌이 그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핵심은 대통령 권력을 줄여 국회로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작아지고 여의도가 커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권한이양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심대평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행정고시 출신인데 공직에 입문한 지 얼마나 되셨나?

▶1967년 총리실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들여놓았으니 50년 됐다.

-대통령 권력의 국회 분산보다 중앙권력의 지방 분산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훨씬 긴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압축성장을 통해 산업화를 이룩한 20세기에는 무엇이든 국가 중심이었다. 그러면 효율적이었고, 많은 국민들이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중앙집권체제의 효율성은 수명을 다했다. 지금과 같은 다양화, 다원화 시대에는 지방이 주도하고, 중앙이 지원하고 조정하는 형태로 국가경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 주민의 행복가치를 높이는 국가운영이 가능해진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수도권 집중 및 과밀화가 아주 심한 나라다. 반면 지방은 젊은 인구 유출과 고령화로 활기를 잃고 있다. 좁은 국토를 더욱 좁게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중심의 개발계획이 한때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주택, 교통, 환경 등 수도권 과밀화로 인한 폐해가 훨씬 심각하다. 그래서 수도권 규제가 시작되었는데,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수도권 규제의 반사이득을 지방이 챙겨가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도권도 함께 살리면서 지방을 활성화시키는 지방분권, 지방의 자율과 창의성을 최대한 살리는 행정으로 가야 한다. 과감한 지방 중심 행정을 펼치게 되면 굳이 수도권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 좁은 운동장을 넓게 쓸 줄 알아야 축구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좁은 국토를 넓게 쓰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이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2할 자치'라고 표현한다.

▶1995년에 지방자치가 부활했으니 22년이 됐다. 그런데 중앙정치권의 필요에 의해 위로부터 주어지는 방식이다 보니 자주재정권, 자주입법권, 자주조직권 등이 미흡하다. 그래서 '무늬만 자치'라는 표현도 사용되고 있다. '2할 자치'는 재정 면에서 국세와 지방세의 비중이 8대 2라는 현실에서 나온 표현이다. 한편 국가사무에 대한 지방 고유사무의 비중은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여러 가지 보완조치를 통해서 7대 3 정도로 늘어났다. 지방 고유사무는 32% 정도다. OECD 평균 수준인 40%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에서는 지방정부(local government)라는 표현을 쓰는데 한국과 일본에서는 지방자치단체라는 용어를 쓴다. 중국과 같은 일당 독재국가에서도 베이징시정부라고 표현하는데 왜 그런 것일까?

▶지방정부라는 표현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대등한 관계(협력과 상생)를 강조한 개념이다. 따라서 지방정부라는 표현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지방정부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자율권이 부족하고 여러 가지 미흡한 측면이 있다. 최근 개헌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명실상부한 지방정부의 탄생이라는 문제의식을 담았으면 한다. 여태까지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하부기관이라는 인식을 가져왔다. 한편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에 의지하고 다른 자치단체의 업무를 모방하는 등 의존적 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지방은 의식을 바꾸고 중앙은 인식을 바꿔야 한다.

-명칭 중에 이상한 것이 또 있다. 서울은 특별시이고, 제주는 특별자치도이다. 그럼 나머지 일반 시나 도는 무엇인가?

▶수도 서울이 가지고 있는 규모, 성격, 역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특별시로 명명했다. 제주의 경우, 국제자유도시와 같은 형태의 독특한 자기 권한과 책임으로 지역발전을 이루라는 취지에서 제주특별자치도법이 만들어졌다.

-최근 지표를 보면 제주도가 가장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물론 관광자원이 풍부한 특성이 있기는 하나, 특별자치도의 자율적 권한이 성장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제주도 사례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면 좋지 않을까?

▶지방자치발전위원회의 제안으로 제주도에서만 실시되고 있는 자치경찰제를 전국적으로 도입하고자 한다. 종합계획의 아주 중요한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지역이 제주도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방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지방을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한편 지방에 권한을 이양할 때는 반드시 책임도 부과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이 자율과 창의를 발휘해 지역의 개성과 특색을 살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대통령선거가 40일 남았다. 선거 국면에선 여야 할 것 없이 지방분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주장을 쏟아낸다. 일부 후보는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이 필요하다는 언급까지 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중앙부처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줄이고 싶어하지 않는 기득권의 저항이고, 다른 하나는 지방이 자기 역량 강화를 통해 권한 이양에 적극적으로 대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가 의기투합하면 얼마든지 권한과 책임의 일괄이양이 가능하다.

-메르스 사태 당시 초기에는 중앙부처에서만 확진 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지방에서도 충분히 가능했을 텐데, 굳이 시간을 지체하면서 이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나?

▶메르스뿐만 아니라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때도 적절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지방에서 방역을 책임지고 전국 공통의 문제만 중앙 컨트롤타워에서 지휘하는 매뉴얼만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몇천만 마리를 매몰하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지방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 신속 정확한 위기관리에 도움이 된다.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다산 정약용조차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쓴 편지에서 "절대 한양 사대문 안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1392년 조선왕조 개국 이래 중앙집중 현상은 변함이 없는데 지방자치가 혹시 한국인의 DNA에 안 맞는 것은 아닌가?

▶흔히 지방자치의 역사가 일천하다고들 하는데 역사를 보면 이미 고려시대부터 지방자치를 한 경험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향약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사람은 서울로, 말을 제주로'라는 속담에서 드러나듯이 국가 운영은 서울 중심이었다. DNA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한국인만큼 자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국민도 없다고 본다. 개성과 특색이 있는 문화, 끼를 중시하는 사회 풍조, 그리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평등의식은 지방분권과 자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이 중앙권력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을 하니까 지역감정이 심화된다. 중앙권력에 대한 집착이 낮아지면 지역주의도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학자가 영남은 패권적 지역주의, 호남은 저항적 지역주의, 충청은 그 사이에서 실속을 챙기는 반사적 지역주의라고 하더라.(웃음) 지역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다. 지역주의가 배타적으로 발현될 때 나쁜 것이다. 포용적 지역주의, 애향심으로 간다면 지역발전에 아주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포용적 지역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도 중앙권력의 집중을 줄여야 한다.

-한국 지방자치의 기형성은 교육감 직선제로 상징되는 일반행정과 교육행정의 분리에 있다. 대다수 선진국은 교육행정이 일반행정에 통합되어 있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 등 제도개혁이 필요하지 않나?

▶교육 자치를 하자는 헌법 규정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또한 교육감을 선거를 통해 정치적 중립지대에 놓겠다는 것이 지방교육자치법의 취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선거는 정치적 성향을

띠게 된다. 교육감을 선거를 통하게 만드니 정치 성향이 오히려 강화된다. 좌파 교육감-우파 교육감, 진보 교육감-보수 교육감으로 나뉘는 지방교육자치는 국가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자치와 일반 지방자치는 연계 통합의 과정을 거쳐 하나로 가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국가 행정이 하나로 돼 있는 것처럼 종합행정인 지방자치 행정도 교육과 경찰과 일반 행정이 통합돼서 운영되어야 행정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복행정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유사한 기능의 도서관을 대구시청과 대구교육청이 별도로 운영한다.

▶도서관뿐만 아니라 중복행정으로 인한 비효율과 낭비가 상당하다. 엄밀히 말해 지금의 교육자치는 교육 주무부서의 자치다. 학생과 학부모가 아니라 교육공무원 중심의 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반드시 바뀌어야 할 핵심 포인트다.

-행정은 별도인데 의회는 몇 년 전 통합이 됐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교육위원회라는 별도의 기구가 존재했다. 지방교육자치법에 의하여 특별시'광역시'도에 설치되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및 학예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등 의회기능을 수행해 왔다. 즉 의회도 일반행정과 교육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6년 12월에 법이 개정되어 2010년부터 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 내 교육상임위원회로 통합하였다. 그 후 아무 문제없다. 행정도 이렇게 가야 한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글로컬 시대이기도 한다. 5월 10일 새 정부가 출범한다. 한국 지방자치의 미래는?

▶20세기의 국가 목표는 부국강병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국가 목표는 국민행복이다. 개개인의 행복 추구는 국가 행정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세심하고도 꼼꼼한 맞춤형 행정으로만 가능하다. 20세기까지가 국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지방의 시대다. 부국강병의 시대는 중앙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국민행복의 시대는 지방이 중심이 돼야 한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지역 내의 문제만 해결하고 국가 전체적으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매일신문'TBC 공동기획 '신지호가 만난 사람'은 4월 1일 오전 9시 30분 TBC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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