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라즈서 약 70㎞ 떨어진 페르세폴리스는 이스파한에서 출발한 지 거의 5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드넓은 평야에 우뚝 솟은 산을 뒤로하고 거대한 단구 위에 건설된 도시이다. 대부분 허물어졌지만 2천500년 전 화려했던 왕궁의 모습이 남아 있는 흔적만으로도 규모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1세에 의해 건설하기 시작해 손자에 이르기까지 약 6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뛰어난 행정조직과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이어지는 육상 실크로드, 인도서 건너오는 해상 로드가 이곳을 통해 지나가 페르세폴리스는 동서로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강력한 힘을 가진 제국에 온갖 조공을 바치러 온 사신들로 인해 늘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아파다나궁은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각종 선물을 바치는 모습들이 실감 나게 조각되어 있다. 고대 제국들은 왕궁 공사를 할 때 노예를 이용하거나 국민들을 강제 동원하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페르세폴리스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각종 수당 등 대우를 받으면서 공사에 참여했다. 제국으로 들어오는 풍족한 물품들을 잘 분배하면서 대공사를 했기 때문에 원성을 사지 않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점령했을 당시에 당나귀 2만 마리, 낙타 5천 마리에 보물을 싣고 갔을 정도로 많은 유물들을 남겼다고 한다.
저녁이 되어서야 쉬라즈 시내로 들어왔다. 지금까지 중급 호텔서 경비를 절약하며 지내왔지만, 이틀 후면 이란을 떠나야 하니 쉬라즈에서 가장 근사한 호텔인 5성급 호텔로 갔다. 막상 들어왔지만 비싼 가격에 고민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으나 프런트 직원이 보여 준 가격표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급 시설이 완비된 호텔의 하룻밤 가격은 고작 70달러 내외였다. 조식으로 차려진 뷔페는 족히 20달러짜리 이상은 되어 보였다. 남녀가 구별된 수영장에서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면서 나 홀로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쉬라즈의 오전은 햇살이 따사로워 반소매를 입어도 될 만한 기후였다. 해발 1,500m 고원에 있었지만 '시인과 장미의 도시'답게 따스한 곳이었다. 하페즈 영묘가 있는 사원을 찾았다. 하페즈는 이란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민족시인으로 대부분 가정에 그의 시집이 비치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의 시집은 코란 다음으로 중요한 책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공원으로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걸어가면 팔각형의 정자 안에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 석관이 놓여 있다. 현지인들이 탑돌이하듯 하페즈의 영묘를 돌면서 기도를 한다. 모습은 다양하나 진지함은 한결같고 하나같이 행복한 얼굴이다.
오후에는 시아파 3대 성지 중 한 곳인 샤에 체라그 모스크(일명 거울사원)로 갔다. 대부분의 모스크는 바자르(시장)와 가까이 붙어 있다. 종교가 인간들의 삶 가까이 존재하며 쉽게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한꺼번에 전통시장과 모스크를 둘러볼 수 있어 좋다. 들어가는 입구는 남녀가 구별되어 있으며 여자는 히잡을 써도 별도로 차도르를 입어야만 입장할 수 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여성들을 위해 차도르를 무료로 빌려준다. 모스크 안에도 칸을 나누어 남녀가 예배 보는 곳이 분리되어 있다. 모스크의 벽면과 천장은 거울 조각으로 장식해 놓았다. 거울은 보석보다 찬란했고 예배 보는 소리조차 거울에 반짝이며 흩어지는 듯하다. 원래 이곳은 이슬람 신자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고 사진 촬영도 허용되지 않는다. 말없이 애원하는 표정이 먹혔는지 관리인이 조용히 셔터를 누르라고 한다. 한꺼번에 두 가지를 허락받은 필자는 진지하게, 또는 울먹이면서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하는 셔터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엄숙한 분위기를 깨지 않고 영상을 담으려 긴장한 탓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란인들은 비록 현재는 풍족하지 못하지만 자존심은 대단했다. 선조들이 이룩한 찬란한 역사와 이슬람을 이끌어 가는 맏형의 위치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한국에 대해선 상당히 우호적이고 이란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많이 떨어져 생각보다 물가는 저렴했다. 이방인(손님)들에게 베푸는 친절함은 몸에 밴 듯했고 여행 중 간혹 일어나는 사소한 긴장감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안전했고 편안했다.
가는 지역마다 가장 근사한 식당에서 식사했지만 금액은 100만리얄(약 4만원)을 넘기 어려웠다. 하지만 빵과 치즈, 구운 양고기, 올리브기름을 두른 모둠야채 등 식단은 비교적 단조로웠다. 이런 종류의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필자는 이란을 떠날 무렵 체중이 2㎏이나 빠져 있었다. 술에 대한 통제가 심해 여행 중 반주를 즐기는 필자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여행이란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경험이지만 종종 내 생각의 정상치를 벗어날 때도 있다. 이제 돌아가는 길은 멀고 지루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사연들이 많아 추억을 편집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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