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건축, 문화가 되다/ 글'스케치 최상대/ 학이사 펴냄
248쪽, 2만원.
말하는 건축가 최상대 씨(한터건축 대표)가 대구지역의 주요 건축물과 대표적인 경관을 글과 그림으로 담은 '대구의 건축, 문화가 되다'를 펴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대구미술관 스케치가 보인다. 책이 '그림책이 아닐까' 의심케 할 정도로 많은 스케치가 담겼다. 출퇴근길에 스쳐 지났던 건물도 눈에 익다. 책은 대구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27개의 건축물, 이들을 품은 구조물과 자연적 환경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살펴보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건축사무소에서 나와 대구로 오기까지
최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건축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최대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대구은행 본점, 86아시안게임'88 서울올림픽 레슬링 경기장, 연세 세브란스 병원, 이화여대 목동병원, 국민은행 연수원, 연세대와 고려대 캠퍼스 등 굵직한 건축물이 그의 손을 거쳤다. 대구와는 인연이 없던 그가 대구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대구예총) 수석부회장과 대구경북건축가회장 등을 지냈다. 왜, 어떻게 대구에 왔을까. "건축사무소를 차린 형을 돕고자 대구에 머무를 때가 많았어요. 사색할 시간이 늘었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스케치할 수 있었어요. 그런 시간을 활용해 응모했던 삼척문화예술회관 설계 공모에 당선됐어요. 공사 마무리를 하려면 서울에서 하던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죠."
◆건축으로 대구를 이야기하다
어릴 때부터 읽고, 쓰고,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는 건축 전공을 택하며 문학과 그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가끔 '건축은 종합예술이다'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일을 제대로 하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됐다. 건축이 예술의 범주에 들도록 실천하며 사는 게 꿈이다. 캐드(CAD)'레빗(REVIT)과 같은 프로그램 소프트웨어로 건축 설계가 자동화됐지만, 여전히 스케치에 매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보고, 그리고, 느끼고, 쓰는 데서 오는 '손맛'은 거부하기 어려운 즐거움이다. 그의 손에는 역시 스케치북이 들려 있다. 물감에 젖어 쭈글쭈글해진 종잇장 사이로 계산성당이 보인다. 책에 있는 그 계산성당이다. "건축에 담긴 인문학적 감성,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에 문화를 담고 싶었어요. 3년쯤 전에 유럽'중국'일본의 건축과 문화기행을 통해 느낀 생각과 스케치를 정리한 책을 냈어요. 미학'조형학'인문학적 요소를 접목해 다양한 면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시민들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일상적으로 접하는 건축물을 그림으로 보여주면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어요."
파리 하면 에펠탑, 시드니 하면 오페라하우스가 떠오른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많은 말을 낳았지만, 얼마 전 서울에도 제2롯데월드라는 '랜드마크'가 솟아올랐다. "조형미를 갖춘 대형 시설도 중요하지만 어떤 요인들이 도시를 특성화시킬지 폭넓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대구엔 4대 읍성'근대화 같이 다른 도시와 차별화한 가치가 있잖아요. 물량주의'고층화에 집착하지 말고 작은 것을 재발견하는 데서 도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좋은 건축물은 혼자 잘 만들어질 수 없다. 수성못, 강정보, 청라언덕 같은 경관을 이야기한 것은 '장소성'과 '맥락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면서 대구에 대한 기억을 남기는 것들이다. 강정보는 현대시설물이지만 강변은 과거를 품고 있다. 강정보 일대는 젊은 예술가들이 퍼포먼스를 위해 모이는 현대미술의 성지다. 최근 들어선 카페나 디아크부터 선교사 주택까지, 대구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경관은 '명건축'이다.
◆고유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없다. 프리츠커상은 1979년 미국 건축가 필립 존스를 필두로 매년 인류와 건축 환경에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공헌을 한 건축가에게 주는 상이다. 2016년까지 수상자 40명이 나왔지만, 한국인은 없다. 일본에는 1987년 단게 겐조부터 2014년 반 시게루까지 수상자가 7명이다. 중국도 2012년 왕수가 있다. 1983년 수상자인 중국계 미국인 이오 밍 페이까지 포함하면 2명이다. 미국엔 6명이 있다. 문제가 뭘까? "건축의 세계화는 지역성에 뿌리를 둔다고 생각해요. 일본 건축계는 자국 문화를 특성화한 건축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항주에 기반을 둔 왕수가 주목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죠. 왕수는 주로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건축했는데, 외국 심사위원들이 보기엔 독특한 멋이 있었던 거죠. 우리나라에도 거슬러 가면 김중업'김수근 선생 등이 있었고, 현재 활동하는 건축가도 그 역량이 충분한데,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건 한국적 가치관을 담은 건축물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북촌 한옥마을이 인기다. 버려졌던 한옥을 다시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다. 최 대표는 마냥 반가워할 수 없다고 했다. "전통 건축을 고집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목조와 기와의 성격상 높고 길게 만들 수가 없죠. 그렇게 만든 정자에 소박하고 고요한 멋이 있을까요. 완자창이 아름답다고 해서 창호지에 나무창살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전통을 재해석하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현대 건축가가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봐야죠."
◆인문학은 수백 년이 지나도 건축물을 돋보이게 하는 힘이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프리츠커상을 최초로 수상한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이다. 지난해 그의 타계로 유작이 되다시피 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건축물에 대한 평가는 차가웠다. 역사적인 장소에 번지르르한 괴물이 나타났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최 대표는 "몇 발 앞선 건축이 아닐까 싶어요. 자하 하디드는 이미 몇 년 뒤 미래를 내다본 거죠. 건축가도 10년, 20년, 심지어 100년을 예측해 건물을 설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가치를 발견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요?"
최 대표는 능력과 열정이 가득한 건축가가 많은데 우리나라 건축이 고차원적 수준에 이르지 못한 데엔 다른 이유가 있다고 했다. 건축이 창작과 생산의 경계에 있어서다. "건축설계는 건축주의 요구로 시작되죠. 건축은 트렌드에 민감한 휴대폰'자동차'의류처럼 공급자가 생산하는 상품이 아니고, 음악'미술작품처럼 창작이 자유롭지도 못해요. 건물이 만들어지고 나면 건축가의 초안과는 많이 달라져요.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은 없어요. 그만큼 건축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죠."
그래서 건축에 인문학이 가미돼야 한다고 말한다. 창작에 대한 의지와 건축학 이외의 지식이 건축주를 설득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는 함께 만든다
"르 꼬르뷔제는 자신의 영혼을 바쳐 라 투레트 수도원 같은 불멸의 건축물을 만들었지만,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떨까요? 자본주의 시대상을 반영한 아파트를 만들었을지도 모르죠. 역사도시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보존하고 훼손하지 않는 것, 또 복원하는 것도 건축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선별하는 건 행정가와 시민도 함께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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