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장미, 선거의 꽃으로 기억되길

형형색색 봄꽃들이 만발한 4월이다. 개나리를 시작으로 매화, 산수유, 벚꽃, 진달래가 산과 거리 곳곳을 수놓는다. 꽃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의 모습은 꽃만큼이나 화사하고 꽃보다 아름다운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싱그러운 꽃내음이 겨우내 무뎌졌던 심장까지 다시 요동치게 만든다. 하지만 간지러운 봄바람에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은 흩날리는 벚꽃 잎과 함께 이제 엔딩을 고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냉철하고 신중한 이성을 장착하고 2017년 5월에 개화할 '장미'를 맞이해야 한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치러질 '장미 대선'의 태생은 불행했다. 조기 대선은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에 분노한 국민이 촛불을 들고 직접 정치에 참여해 탄생했다. 국민의 힘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며 부패한 정권을 몰아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재건할 정치 지도자를 뽑기 위한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대선은 당초 일정보다 7개월 이상 당겨졌지만 물리적으로 세심한 검증을 하기도, 제대로 된 후보를 고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마냥 꽃향기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비극으로 시작됐지만 이번 선거를 장미꽃만큼이나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선 치열한 고민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최근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고무적인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1번, 2번을 찍겠다는 국민이 사라졌다. 역대 선거마다 되풀이됐던 지역 구도가 약화됐다. 양강 구도를 확실히 굳힌 두 대선 주자는 전국에서 오차 범위 내 치열한 박빙의 승부를 보였다. 영남에서도 호남에서도 어느 한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는 쏠림현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수의 적자', '진보의 아이콘' 같은 이념을 앞세운 유세도 유권자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보수 진영의 후보들은 본인이 진정한 보수의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보수를 지향했던 영남 지역의 표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케케묵은 이념 논쟁도 이미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민심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대선 주자들은 피가 마르겠지만 유권자로서는 과거와 달라진 2017년 대선판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앞서 언급한 구태 선거의 전형적인 모습이 일부 소멸되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이다. 매번 선거를 앞두고 불었던 간첩 사건이니 전쟁설이니 하는 근거 없는 북풍 공작도 말끔히 사라졌다. '트럼프발 안보 위기'로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전략 싸움만 맹렬할 뿐이다. 저질적인 선동적 가짜 뉴스도 SNS와 메신저를 통해 선거판에 쏟아지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현명한 판단을 내려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조폭'이나 '신천지'와 같은 황당무계한 네거티브 공방은 하루 수다로 지나갔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끈 경험을 한 우리 국민은 참정권의 소중함을 느꼈다. 내가 행사할 수 있는 한 표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 위대함을 맛본 것이다. '나 한 사람 투표한다고 바뀌겠어?'라는 생각은 80% 이상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으로 돌아왔다. 국민 모두가 부끄러운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후회 없는 선택을 하리라 단단히 벼르고 있다. 역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철저한 검증만이 답이다. 어떤 후보가 나라 안팎으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할 진짜 지도자감인지, 과연 누가 분열된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국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지 반복해 따지고 물어야 한다. 마침 이번 주부터 대선 주자들의 TV 토론회가 시작됐다. 새롭게 도입된 대본 없는 '스탠딩 토론' 방식이 검증의 좋은 수단이 될 것이다. 꽃의 여왕에서 선거의 꽃으로 기억될 장미의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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