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자연이 주는 선물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알맞은 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와 있었다.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한동안 몸살 기운 때문에 아침이면 밤새 목구멍이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처럼 말라 내 미간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어찌 된 게 매년 더위가 심해지듯 매년 감기도 독해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감기가 독하게 느껴지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칠 만큼 일주일간 나를 괴롭힌 그 독한 감기는 오늘 아침 비가 갠 맑은 하늘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창가로 가서 문을 활짝 열었다. 감기 탓에 맡을 수 없었던 봄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는 봄바람이었다. 식욕도 돌아와 커피를 한잔하며 늦은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들은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밥상이 되어 주었다. 적당히 부른 배는 내 의욕을 왕성하게 만들어 줬고 적당히 내 방과 집 주변 건물들을 비추던 햇살은 나를 집 밖으로 끌어내었다. 일주일 만의 외출이었다.

우선 가벼운 발걸음으로 느긋이 골목을 걸어 책방으로 향했다. 별거 아닌 외출인데도 봄이라 그런가? 설레었다. 무작위로 선곡된 음악도 오늘따라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나름 만족한 오후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컴퓨터 앞에 앉아 커피숍에서 읽다 만 책을 꺼내 들었다. 그때, 열어 둔 창으로 들어온 저녁 바람이 책장을 넘기는 내 손에 닿았다. 시선은 바람이 들어온 창밖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창밖의 어둑해진 풍경은 낮의 들떠 있던 나의 설렘을 삼키고 없었다. 그 대신 밤의 쌀쌀하면서도 고독한 봄바람이 내 마음속에 조용하고도 쓸쓸한 기분이 되어 자리 잡았다. 낮의 설렘과 다른 감정이었다.

문득,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무언가 가슴 가득 수많은 감정이 오고 갔다. 그저 참 좋은 시간이었다. 어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평소보다 감성적이었다.

일주일간 내 몸의 감각들은 오로지 바이러스라는 감옥에 갇혀 아픔만을 느끼다 해방과 동시 밀려드는 오감에 감동했던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밀려드는 감정에 나의 행위들이 뜻있게 느껴지고 쓸쓸함마저 벅차게 느껴지게 했던 걸까? 잠시 책을 덮고 잔잔히 밀려드는 쌀쌀한 바람을 마주했다.

보고 듣고 숨 쉬고 느끼고 맛볼 수 있었던 감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큰일이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여긴 나의 오감이 오늘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것이고 어느 하나 빠지지 않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해준 날이었다. 오늘 밤은 익숙해지면 잊힐 오늘의 감동을 오래 만끽하고 싶어 늦은 시간 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할 것 같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