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추사에 필법·장법 익혀
中·日 여행 신문인화 수련도
석재 서병오는 고전을 익혀 새로움을 창조하는 입고출신(入古出新)의 천재였다. 이는 가까운 시대 것부터 익혀 차츰 먼 옛날로 소급하는 것으로 청나라 후기 고증학과 금석학에서 '근대정신'을 공부하는 방법이었다. 석재는 어릴 때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팔공산 동화사에서 불교를 체험하고 팔하(八下) 서석지(徐錫止'1826~1906)를 통해 조선후기에 유행한 동국진체를 배웠다. 18세 때는 운현궁의 석파 이하응에게 골기 있는 예서와 초서가 함께하는 난(蘭) 치는 법을 익혔다. 석재의 20대 작품에서는 석파의 굴곡진 삶을 보여주는 삼전법(三轉法)과 송곳 같은 기필(起筆)과 수필(收筆)이 보인다. 이어 석파의 스승인 추사 김정희의 필획과 장법(章法)을 익히며 추사의 문묵에 핍진(逼眞)했다.
1898년부터 시작된 두 차례의 중국 여행에서 묵법과 필법의 변화를 가져온다. 당시 양쯔강의 강남은 다양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상하이, 수저우, 항저우, 양저우, 난징에서 신문인화의 묵향을 보고 느꼈다. 양주팔괴의 판교 정섭을 비롯해팔대산인(八大山人), 하소기(何紹基), 조지겸(趙之謙), 오창석(吳昌碩), 포화(蒲華), 제백석(齊白石), 민영익(閔泳翊), 손문(孫文) 등과 직간접 영향을 주고받았다. 세 차례의 일본 여행을 통해서도 교토 화파의 묵법을 보았고 에도의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조선의 예술을 알렸다. 이러한 중년에 명대 동기창(董其昌)과 원대 조맹부(趙孟)를 익혔고 다시 송대의 소동파(蘇東坡)를 거쳐 당대 안진경(顔眞卿), 저수량(遂良), 우세남(虞世南), 구양순(歐陽詢)에 이르기까지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 다시 육조 묘지명(墓誌銘)을 거쳐 한나라 '경명'(鏡銘)과 후한의 '팔분예서'(八分隸書)에 도달하고 진대의 '각석'(刻石)과 '종정문'(鐘鼎文)을 익혀 서법과 신문인화를 수련하니 그야말로 수천 년의 동아시아 문화사를 관통하는 노력이었다.
이 문인화는 석재가 28세 때 그린 작품으로 대원군 이하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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