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비싼 모스크바 중심지 한식당
현지인들 줄 선 모습 뉴욕과 비슷해
맛·질·서비스에 비해 가격도 싼 편
한국문화에 대한 높아진 관심 반영
최근 외국 휴양지에서 연예인들이 한국식당을 경영하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상에 지친 많은 사람들의 어디 조용한 섬에 식당이나 내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란다. 잠시 프로그램을 보니 우리 음식에 대한 외국 손님들의 반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도 프로그램 인기의 요인인 듯했다.
최근 수십 년 사이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바뀐 만큼이나 해외에서 한식당의 위상도 크게 변했다. 외국에서 처음에 한식당은 코리아타운, 아니면 한국 출장자나 관광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호텔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듯 한국인 중심으로 '음지에서' 운영되던 한식당은 한국인 동행 없이 현지인들만 드나들기엔 힘든 곳이었다. 특히 이민의 역사가 짧은 러시아 땅에서는 더욱 그랬다. 실제로 평양에서 직접 관리하는 북한 식당이나 중앙아시아식으로 변형된 한식을 파는 고려인 식당보다 인지도가 떨어질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인 출장자들이 주로 드나들던 몇몇 한식당은 접근성도 떨어지고 가격까지 비싸서 가난한 유학생들에게도 그림의 떡이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가 당시 10달러였으니 향수를 달래는 값치곤 상당했던 것이다. 사실 조잡한 인테리어에 분위기도 별로라서 그다지 가고 싶은 곳도 아니었다. 한식을 좋아한다는 외국인 친구들도 어지간히 친해지기 전에는 데려가지 않았다. 차라리 집으로 초대해서 간단한 우리 음식을 대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접해본 러시아 한식당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모스크바 시내 백화점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는 근처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 식당은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모스크바에서도 붉은 광장 근처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다. 유명 여행 평가 사이트에서 좋은 평점을 받은 그 한식당은 고풍스러운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정장 차림의 현지 직장인들이 손님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보았던 뉴욕 맨해튼 한식당 앞에 현지인들이 줄을 늘어선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 친구는 한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이곳에 온다고 했다. 교통도 편하고 음식의 맛과 질, 서비스에 비해 가격도 싼 게 장점이란다.
지난겨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러시아 선생님은 단골 레스토랑으로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나가 보니 시내에 있는 한식당이었는데 선생님은 익숙하게 제육볶음과 밥을 주문한다. 그러곤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가에 한식당이 몇 군데 있다면서 맛 평가도 내린다. 어디는 고기를 잘하고 어디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분위기에 분식 종류가 강하고 음악이 좋다는 분석까지 내놓는다. 외국에 나가면 어지간하면 한식당을 찾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현지 지인들 덕분에 한식당을 몇 차례나 가게 되었다. 덕분에 기존 러시아 한식당에 대한 선입견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한식당들은 중심가 열린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서빙을 하는 종업원도, 손님도 현지인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익숙하게 한식을 주문하고 즐기는 모습은 한국과 한식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음식문화는 한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기호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중국식당은 화교들의 길고 질긴 이민사와 중국 식문화의 보편성을 반영한다. 2000년대 중반 러시아에서 일식은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푸틴 대통령이 초밥 애호가로 알려지면서 젓가락을 사용할 줄 아는지가 교양의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번에 보니 거리마다 호황을 누리던 초밥집들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렇듯 타국에서 어느 나라 음식문화의 유행은 해당 국가의 이민사나 식문화, 해당 국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 그렇기에 최근 러시아 한식당의 변화된 모습은 양국 관계의 발전을 통한 교포 사회의 안정, 한류 등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는 흥미로운 현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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