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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지음/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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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작
이영철 작 '분홍나라 사랑일기'

웃음과 눈물의 '한밤의 뜀박질'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지음/마음산책)

내 안에도 그럴 듯한 이야기가 한 편쯤은 있다고 믿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끝은 슬금슬금 가까워 보인다. 쓰기보다는 읽기가 편해서 읽기만 하고, 읽은 것을 안다고 착각해 헛수다만 늘었다. 작가는커녕 제대로 된 독자 되는 공부나 하는 것이 제 격이다. 그래도 아직 거덜 내지 않은 밑천은 있다. 읽고 싶은 책을 만나면, 밤을 새워 읽는 열정의 불씨만큼은 채 꺼뜨리지 않았다.

내 안의 이야기를 꿈틀거리게 만든 책 한 권이 있다. 단편 '버니'(1999년)로 등단한 이기호 작가의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이다. 2014년 1월부터 2년 동안 모 일간지에 연재한 이야기 중에서 엄선한 40편을 3개의 장으로 나눠 엮은 책이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에세이 형태였으나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과 매체 특성을 고려해 짧은 소설'로 연재하였다고 한다.

'한밤의 뜀박질'은 1302호의 초인종을 누르는 민수의 웅얼거림으로 시작된다. 두 달 전부터 밤 11시면 1302호의 쿵쾅거리는 소리 때문에 막 백일이 된 딸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남자가 어쩜 그리 담이 약할까?' 아내가 하도 눈을 흘겨대기에, 오늘은 용기를 내어 가장 노릇을 하러 온 것이다. 막상 문이 열렸을 때, 1302호 남자가 민수에게 집 안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민수는 희한한 광경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다. 파자마를 입은 할머니 한 분이, 교복을 입은 학생 한 명을 잡으려고 거실과 부엌, 방과 방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제 어머니와 제 아들입니다.…어머니가 치매기가 좀 있으신데… 가끔 우리 아들을 돌아가신 아버지로 착각을 해요.…처음엔 그냥 말렸는데… 지금은 그냥 냅두는 처지입니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 하자고 해서요… 저렇게 쫓아다니시고 나면 잠도 잘 주무시거든요."

민수는 할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해 도망치는 학생의 지친 기색 없이 밝은 얼굴을 보며, 자신의 딸도 1302호 남자의 아들처럼 자라나길 속으로 바란다. 이처럼 이기호의 짧은 소설들은 웃음과 눈물이 버무려진 작품들이다. '책을 접할 여유가 없었던 현대인이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대로 순수 서사에 힘을 주기보다는 콩트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2000년대 문학이 선사하는 작품 가운데 가장 개념 있는 유쾌함으로 평가 받는 이기호 작가의 소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를 읽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이 한바탕 시원하게 웃기를 바란다. 차라리 비극일지언정 폭력적이거나 냉혹하지 않아서 좋고, 밝고 긍정적이면서도 가볍지만 않아서 좋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데…, 내 안의 이야기들이 다시 꿈틀거릴 정도라서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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