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긍정' '성공' 등 많은 단어가 서점가를 장악하고 있고, 미디어에서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들이 콘텐츠로 만들어지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의 홍수 속에 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행복한 것일까? 실체가 없어 명확하게 정의할 수도 없고, 보고, 만지고, 맛볼 수도 없는 행복이라는 것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 천명하고 있는 권리인 행복추구권의 내용이다. 요즘 들어 행복추구권이라는 말이 내 귓가를 맴돌고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추구'라는 단어 때문이다.
'추구-追(쫓을 추) 求(구할 구) 목적을 이룰 때까지 뒤좇아 구함.'
사전적 의미의 추구는 목적을 두고, 그 목적을 이룰 때까지 뒤좇아 구하는 것이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개척의 시대에 그들의 행복은 적극적인 추구의 대상이었고 이루어야 할 성취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우리 역시 과거 일제의 지배하에서 독립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 쟁취해낸 행복은 적극적인 추구의 대상이었다. 지금 시대에 그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삶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추구해야 하며 적극적인 마음을 통해 행복의 길로 밀고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꼭 행복은 우리가 목적으로 하고 쫓아가며 이루어야 하는 대상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조금은 게으른 주말의 아침을 맞이하고, 창문 틈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아침 햇살의 따사로운 줄기가 눈가에 이르러 긴 기지개를 켜며, 하품하고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커튼을 열었을 때 봄날의 아침이 따뜻하게 내려앉은 풍경을 바라보며 우리가 느끼는 것은 목적을 두고 쫓아가서 이루는 대상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누군가가 그토록 원했던 그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만 변해도 이미 행복은 내 옆에서 나와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음을 알아차릴 때가 한 번씩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그 목적을 이루고자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성취의 대상이자, 이미 내 안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행복을 위한 나만의 목표를 만들어 힘차게 밀고 나아가는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만의 행복의 목표를 찾기 어려울 때는 우리 잠깐 숨을 크게 쉬고 잠시 들고 있던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조용한 그늘에 앉아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주위를 보자. "앞만 보고 가고 있어서 네가 옆에 있는 줄 몰랐어, 정말 고맙다"라며 나의 눈을 옆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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