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춘추칼럼] 정치 보복과 적폐 청산 사이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서울대 의대 박사. 기생충학 전공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서울대 의대 박사. 기생충학 전공

MB 측근 비리 조사하면 정치 보복

4대강 사업 감사 지시는 적폐 청산

대통령 말 너무 큰 힘 갖고 있어 씁쓸

국가기구 독립성·자율성 발휘해야

4대강 사업은 시작부터 좀 이상한 프로젝트였다. 출발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놓은 한반도 대운하였다. 거기에 동조하는 국민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KTX가 서울과 부산을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오가는 시대에 한가롭게 배를 타고 전국을 유람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유권자들은 이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였지만, 그건 그의 전공인 경제를 살려달라는 주문이었을 뿐, 대운하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국민의 80%는 대운하 사업을 반대했다.

대통령이 모든 공약을 다 지켜야 하는 건 아니다. 특히 대운하처럼 시대착오적인 사업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이명박은 이름을 '4대강 사업'이라고 바꾼 뒤 사업을 재추진한다. 치밀하게 전개된 여론전 때문인지 4대강 사업에 대한 지지율은 이전보다 조금 상승했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20조원 넘게 들어가는 그 사업이 도대체 왜 필요한지 의문을 가졌다. 그럼에도 4대강 사업은 추진됐고, 그 뒷얘기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멀쩡한 강을 보로 막아놓으니 유속이 느려졌고, 요즘 우리나라에 부쩍 심해진 가뭄까지 겹쳐지는 바람에 곳곳에서 녹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부작용을 상쇄시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4대강 사업을 해서 좋아진 점을 찾기가 어렵다. 이쯤 되면 이명박이 이런 사업을 왜 그렇게 결사적으로 추진했는지 궁금해진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2013년 1월, 그간 이 사업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던 감사원은 돌연 입장을 바꿔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이다'라고 양심선언을 한다. 그러니까 감사원은 정권의 서슬이 무서워 거짓말을 해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새 정부에서 이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과 같은 뿌리인 박근혜정부는 이 사업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 사건의 조사는 영영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순실게이트가 우리나라에 이익을 가져다준 면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 측의 4대강 감사 지시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진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혀를 끌끌 차고 헛웃음을 지었다'는 게 측근의 전언인데, 이건 완전범죄라고 생각한 게 탄로 났을 때 보이는 반응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정치 보복 운운할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청계재단이나 이명박 측근의 비리를 조사한다면 그런 비판이 타당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4대강은 그냥 내버려두기에 너무 큰 적폐다. 사업이 어떻게 추진됐는지, 이를 감시할 권력 기구들은 도대체 무얼 했는지, 여기에 부화뇌동한 이들은 누구인지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권력을 잡아 크게 한탕하자'는 불순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너도나도 대통령에 도전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겠는가?

한 가지 씁쓸한 점은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너무 큰 힘을 갖는 것 같아서다. 4대강 감사가 시작된 것도 대통령의 지시였고, 인천공항 비정규직 1만 명을 정규직으로 바꾼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이렇다면 추후 대통령이 바뀌면 열렸던 보가 다시 닫히고, 그 1만 명이 다시 비정규직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건 이런 면에서 위험하다. 만일 검찰과 공정위, 감사원 등의 국가 기구들이 소신껏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어떨까. 4대강은 물론이고 최순실 게이트도 사전에 막았을지도 모른다. 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그래서 이들 기구가 독립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정권의 눈치를 보는 데 익숙해진 이들이 과연 체질을 개선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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